조선총독부의 「극비문서」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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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김두겸특파원】 50년전의 광주항일학생운동의 전모를 밝히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극비문서가 일본「나고야」에 있는 출판사「후우바이」(풍매)사가 발간한 단행본을 통해 공개됐다.
이 극비문서는 조선총독부가 「고다마」(아왕) 경무국장 앞으로 보낸 것으로「사소한 한일학생간의 편싸움」이 급기야 항일운동으로 확대된 직접적인 이유는 『사건발생후 광주지역 일부인, 특히 중학생·학부형등을 중심으로 극도의 불안을 느꼈고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이 극단적으로 유린당했다고 분개, 사실을 과장하여 총독·군사령부에 대해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전보로 진정』한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시 일본인들은 학부형회를 개최하여 도지사·경찰부장에게 경비력의 충실을 진정하는등 냉정을 되찾은 한국인에 비해 오히려 더 흥분했다』고 밝혔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광주학생사건및 그영향」은 서울의 학생운동에 대해 『광주학생투쟁사건에 대한 일본인 학생의 불법을 책망하고 학생들에 대한 관헌의 편파적이고 가혹한 조치를 꾸짖는 한편▲광주 검거학생탈환▲식민지 노예교육철폐▲살인폭도 일본이민군축출▲세계 피압박대중 전투만세등의 표어 및 격문이 살포됐다』고 보고했다.
이른바 총독부 경무국의「학생사건 이면계통도」에 따르면 학생지원운동은 크게 민족주의계와 공산주의계로 나눠 추진됐으며 민족주의계는 신간회왁 근우회, 공산주의계는 고려공산청년회·청년 총동맹·학생위원회가 각각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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