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전감독·노장 허재 '형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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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에서 말하는 '정신력'에는 영어의 '파이팅 스피릿'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다. 더구나 그것이 프로농구 TG라면 두배의 힘과 가속이 실린다. 분명한 전력의 열세와 바닥난 체력, 초보 사령탑이 이끄는 불안한 벤치 등 이 모든 핸디캡을 딛고 TG는 정상을 밟았다.

TG는 지난 11일 5차전에서 세 차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으나 대신 팀의 정신적 기둥 허재를 부상으로 잃었다.

그러나 등에 구멍을 내고 마취제를 흘려넣으며 일전불사를 외친 허재의 초인적인 투혼은 TG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신비한 힘 외에 그 무엇으로도 TG의 우승은 설명되지 않는다.

허재는 "떨어지는 체력을 정신력으로 커버하며 달려왔다. TG 선수가 모두 MVP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재는 "코트에 섰던 4쿼터 마지막 1초는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의 농구인생에서도, 팬들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1초가 될 것"이라며 감격했다.

초보 감독인 전창진 감독은 비록 전문적인 전술과 전략은 미숙했을지 몰랐지만 자신이 거느리는 선수들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3-24로 뒤진 채 시작된 2쿼터에서 지형근과 신종석을 차례로 교체 투입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선수들을 잘 아는 형님같은 감독의 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외국인 선수 데이비드 잭슨과는 시즌 내내 불편한 관계였지만 감정에 휩싸여 교체하는 대신 끝까지 다독여 플레이오프에서 보석으로 둔갑시켰다.

잭슨이 아니었다면 TG는 LG와의 준결승전도 돌파하기 어려웠다. 잭슨도 "TG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말로 벤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다.

TG의 또 하나 숨겨진 힘은 열광적인 원주 팬들에게서 나왔다. TG는 챔피언 결정전 4차전까지 홈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원주 팬들은 끝까지 TG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 정성은 승부의 분수령이 된 5차전에서 귀중한 3승째를 거두는 결실로 돌아왔다.

대구=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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