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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은밀하게 … 무더위 잡는 두뇌 게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최정동 기자

호러·스릴러 작가들과 출판업계에선 이런 말이 돈다고 한다. “올해 대한민국 사회상을 뛰어넘을 만한 스릴러와 공포물을 찾기가 어렵다”고. 그만큼 세상이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암담하다는 소리다. 이 와중에도 여름은 지독한 더위와 함께 다가왔고, 휴가기는 피크(peak)를 바라보고 있다. ‘~하라’, ‘~때 해야 할 것’ 시리즈에서 벗어나, 머리도 마음도 쉬게 할 읽을거리를 중앙SUNDAY가 찾아봤다. 추천에 나선 전문가들은 “이건 꼭 봐야한다”며 자신들의 리스트를 선뜻 꺼내줬다.

장르문학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대중문학이다. 추리소설을 필두로 스릴러·공상과학(SF)·공포·판타지·로맨스 등이 이에 속한다. 요즘은 SF와 로맨스가 섞이기도 하고 역사물과 공포가 섞이기도 한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대중’ 문학이라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 위주의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되레 발뺌부터 하는 경우가 있다. 추리·스릴러 소설의 이미지에서 오는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혹자는 그 해결책으로 ‘패턴에 익숙해 질 것’을 권한다. ‘본격 추리’로 불리는 형사물의 경우 사건이 벌어지고 형사가 나타나고, 형사를 비롯한 일행이 고립·위기에 처한 뒤 피의자가 밝혀진다. 그 뒤에 가려진 슬픈 에피소드는 덤으로 소개된다. 그래서 “소년탐정 김전일은 왜 항상 산장에 갇히느냐”는 우스개가 나오는 것이다. 공포·스릴러에서 “제발 그 문만은 열지 마”라고 하지만 기어코 누군가 열고야 마는 것도 기본 패턴 가운데 하나다.

이 패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너무 뻔해 더 이상 읽을 소재가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온 게 ‘사회적 추리’라는 장르다. 어떻게 해서 이런 범죄가 일어났는지 범인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다. 작위성보다는 당위성, 판타지보다는 리얼리티에 조금 더 힘을 준 장르다. 일상적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감탄을 자아낼 만큼 논리를 풀어가는 경우도 새로운 패턴의 추리 소설에 속한다.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도 있다.

북유럽 작가 작품은 확실한 흡인력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문학은 추리·스릴러물이다. 인터파크 도서 소설 부문 연간 랭킹을 보면 올 상반기 판매량 20위 안에 든 장르문학은 모두 4권. 일본의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독일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들이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일본 추리’, ‘북유럽 추리’라고 해서 트랜드가 딱히 정해진 건 없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전에 비해 신작 출간도 많이 늦어진 편이다. 그러다보니 주요 작가를 중심으로 판이 형성되고 있다.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다양한 추리 스타일을 일궈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단연 선두주자다. 일본 특유의 문체와 촘촘한 추리, 만화같은 배경 등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좋다. 올 3월에 나온 『한여름의 방정식』은 그의 25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왔던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우연히 머물게 된 한 여관에서 살인사건이 나고, 여관 주인의 조카인 초등학생 교헤이는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말린다. 이 책을 추천한 윤영천 하우미스터리 운영자는 “유가와 교수가 보여주는 사건 해결의 짜릿함도 좋지만, 소년과 교수의 교감도 좋은 대중소설의 모범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이 책을 제외하곤 최근 히가시노의 작품이 “사회적 추리로 많이 돌아섰다”는 분석도 많다. 『가가형사 시리즈』같은 형사물보단 인물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에 좀 더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 『악의』에서처럼 ‘왜, 어째서’를 묻는 것이다.

이같은 패턴은 영화로도 우리에게 낯익은 소설 『화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그의 신작 『피리술사』도 내달 초, 출간을 앞두고 있다.

『밀레니엄』, 『스노우맨』 등 노르웨이와 스웨덴 작가들의 전성기가 열렸던 지난해. 당시엔 “장르문학에 스칸디나비안 바람이 분다”는 말까지 돌았다. 올해에도 그 판도가 유지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 『스노우맨』의 작가 요 네스뵈의 『네메시스』가 나와있다. 하얀 설원의 핏빛 복수를 한여름에 읽을 수 있는 기회다. 특성상 강렬한 사건이 소설 초반부터 마구 몰아친다. 흡인력은 보장된 셈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 『상어의 도시 1,2』는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자연스럽게 안착한 상태다. 미국 뉴욕 월가와 이탈리아계 마피아, 그 사이에 껴있는 미모의 M&A 전문가. 이 셋의 조화만으로도 스릴러의 고리는 얼추 완성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이 서로 함정을 파고, 스스로 사건에 얽히는 모습은 흡사 헐리웃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도 준다.

공포 거장 스티븐 킹 신작 이달 출간
‘공포 거장’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신작 『닥터 슬립(Dr.Sleep)』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르면 이달 안에 국내 서점에 나온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소설 『샤이닝』의 속편으로 36년 만에 출간됐다. 『샤이닝』에서 살아남은 꼬마 대니는 어느덧 중년이 되고, 대니는 초능력을 가진 열두 살 소녀를 지켜주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영국 가디언은 이 책을 ‘2013년을 빛낸 소설’로 꼽았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킹은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공감하게 된 독자들이 그를 위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공포 공식이 이번 작품에서도 제대로 통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24주 동안 선정된 존 그리샴의 『속죄 나무 1,2』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의 첫 작품인 『타임 투 킬』의 주인공 변호사 제이크가 다시 나타나 거액의 유산을 두고 치열하게 법정 공방전을 펼친다. 속편에서 제이크는 전편에 비해 나이를 세 살 더 먹었지만, 이 속편이 나오기 까지 실제 시간은 25년이 걸렸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한층 더 드러내보이는 범죄 스릴러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장르문학 중흥기’를 이끌었던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가 『퇴마록 외전』의 두 번째 이야기를 낸다. 지난해 나온 첫 편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서는 퇴마사들의 소소한 일상이 전개됐다. 두 번째 판은 이르면 올해 내에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첫 편을 읽어보지 않은 ‘90년대 퇴마록 팬’이라면 2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두움 싫다면 말랑말랑한 추리소설
어둡고 침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싫다면 ‘밝은 기운’이 넘치는 추리소설을 고르면 된다. 하지만 말랑말랑하다고 해서 내용이 가벼운 건 아니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2』는 일단 표지부터가 만화책 같다. ‘어른이 보기에 시시해 보인다’고 생각하면 오산. 스물 세 살 커피 바리스타의 탐정 뺨치는 추리는 손뼉을 치게 한다. 주인공들은 연애사부터 학교 내 따돌림, 나아가 스토킹에 이르기까지 꽤 스릴 넘치는 일상 속 이야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결말에선 ‘그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는데, 대체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독자는 며칠 밤이고 머리를 싸매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일본 내에선 일명 ‘커피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100만 부를 돌파했는데, 조만간 3편이 나올 예정이다. 커피에 대한 상식도 덤으로 쌓아갈 수 있다. 작가는 스물 여덟 살의 신인이다.

‘아름다운 공포’를 보여주는 온다 리쿠의 『몽위』도 추천 목록에 올랐다. 일본 전역의 학교 아이들이 집단으로 악몽을 꾸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해석하던 꿈 해석가 히로아키는 10년 전에 죽은 첫 사랑이 사건과 얽혀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꿈’이라는 소재가 주는 심리학적인 부분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신작 추리소설이다.

꿈을 소재로 하는 또다른 SF 작품은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엣지 오브 투모로우(All you need is kill)』이다.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사쿠라자카 히로시라는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의 일본인 소설가다.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꾸는 일명 ‘루프(Loop)’에 갇힌 주인공이 어떻게 이 악몽에서 벗어나게 되는지를 쫓아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명의 만화책도 소설을 기반으로 나왔다. 일각에선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낫다”는 말도 있다.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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