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생산으로 명맥 잇는 「울산은장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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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파란 칼날 위에 옛 여인들의 한이 서릿발처럼 서린다.
여인들의 정절을 지켜준 은장도. 우리 조상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말없이 장도를 옷고름에 매달아 주었다. 이때 새색시는 가문의 명예와 정절을 죽음으로써 지킬 것을 말없이 약속했다.
은장도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울산의 「병영은장도」.
전성기에는 마을 전체가 은장도생산을 가업으로 삼고 만들어 왔으나 이제는 2∼3명만이 간간이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만들어내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은장도기능보유자인 허균씨(50·울산시 동동243)는 『값싸고 보기좋은 「플래스틱」제품이 많은데 비싸고 구하기 힘든 은장도가 번창하길 바란다는 것이 애당초 잘못 아닙니까』고 반문했다.
일편단심 은장도라 불리는 패도(패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때. 몽고병사들이 옷고름에 차고 다닌 것이 그 시초였다. 울산에서 은장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조말기 대원군 때.
당시까지만해도 이곳 병영성에서는 군사들이 쓰는 칼·창등을 만들어냈으나 대원군이 이를 폐지하는 바람에 장인들은 은장도를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유지했다.
왜정초기까지도 이곳에는 72개소의 칼방(칼 만드는곳)에 3백50여명의 장인이 있었다.
패도는 칼쇠로 불리는 강철을 불에 달궈 때리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수십번 때리고 불에 달구고…. 이같은 공정을 되풀이하면서 강한 칼이 만들어진다.
여자용의 경우 「일편심」 남자용의 경우 「군자도」라는 세 글자가 칼날 위에 새겨진다. 칼의 길이는 6∼9㎝. 칼자루는 1백년 이상 된 대추나무를 쓴다.
은장도는 칼집이 두께1㎝쯤의 순은으로 백동을 떠서 손잡이부분에 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은장도는 한 개에 10만원을 홋가한다. 칼은 그 모양과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10여가지로 나뉜다. 칼자루나 칼집이 8각형인 팔각도는 왕의 전유물.
칼자루가 을자형인 을자도는 지방수령들이 사용했다. 칼자루·칼집이 볼품없이 쭉 빠진 것은 「막빼기 칼」. 서민용이었다. 은젓가락을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것은 첨사도. 학자들은 한림장도를 애용했고 왕족들은 칼집에 호박·옥을 새긴 옥장도를 즐겼다. 거북의 등 껍질로 칼집을 만들면 대모장도, 산호장식을 붙이면 칠보장도라 불렀다. 대나무뿌리를 쓰면 목장도. 나무제품가운데 가장 상급품이었다.
30년 이상 은장도를 만들어온 허씨는 『이제 문을 닫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재료인 대추나무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주문도 적어(1개월에 1∼2개꼴)신명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부유층에서 소장품으로 갖기 위해 이따금 주문이 있을 뿐이다. 『「플래스틱」제품이 아무리 싸고 좋지만 이런 풍물은 보존돼야할텐데….』전수자조차 마련 못한 허씨는 답답한 듯 피우다버린 담배꽁초를 입에 대고 불을 붙였다.
글 =정일상 기자
사진=양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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