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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세상읽기

오바마 막내동생 같은 미 대사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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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흑인 5명이 사고를 치려 한다. 막을 방법은?’ 답, ‘농구공을 던져준다.’ 흑인들이 얼마나 농구광인지를 빗댄, 미국에선 잘 알려진 조크다.

 절반은 흑인 피가 흐르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예외이기는커녕 그에게 농구는 신앙이자 꿈이요, 인생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하와이로 전학 온 촌뜨기 오바마를 구해준 것도 농구였다. 외톨이가 될 뻔한 그는 농구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고독에서 해방된다. 단 한 번 만난 케냐 출신 친아버지의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농구공이었다.

 오바마의 중·고교 때 꿈은 농구선수였다. 그래서 죽어라 농구만 하는 ‘체육관의 연습벌레’로 친구들은 기억한다. 그는 변호사를 꿈꾸는 친구의 졸업앨범에 이런 글귀를 적기도 했다. “내가 프로농구 선수가 돼 구단 측과 문제가 생기면 네가 변호사가 돼 해결해 주렴.”

 오바마가 조금만 더 농구를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여태 미국의 흑인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게다. 하나 자신의 한계를 느낀 오바마는 농구선수의 꿈을 접고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대 법대에 진학한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서 농구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아내 미셸의 오빠는 프린스턴대 선수 출신의 유명 농구 코치였다. 결혼 전 미셸은 오빠에게 부탁한다. “오바마와 농구를 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고. 본인은 몰랐겠지만 이 심사에서 오바마는 합격했다. “패스할 때 패스할 줄 아는, 팀 전체를 생각하는 이기적이지 않은 남자”라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제때 패스하지 않았더라면 미셸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결혼뿐 아니다. 농구는 그의 정치와도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오바마에겐 선거 전날 꼭 농구를 해야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다. 그래서 선거 하루 전이면 무조건 측근들과 농구 코트를 누빈다.

 그러기에 오바마가 누구와 농구를 하느냐는 건 의미심장한 뉴스다. 실제로 미국 신문엔 “오바마와 농구하는 인물”이란 문구도 등장한다. 오바마의 측근임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뒤 호주 프로농구팀에서 뛰었던 안 던컨 교육부 장관, 듀크대 농구선수 출신으로 오바마의 수행비서였던 레지 러브 등이 대표적인 농구 친구다.

 최근 미 상원 청문회를 통과한 마크 리퍼트 대사 내정자도 오바마와 농구를, 그것도 일대일 농구를 즐겼던 인물이다.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지낸 리퍼트가 예정대로 오면 한국은 연달아 세 명의 특별한 미 대사를 맞는다. 먼저 70년대 충청도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첫 여성이자 처음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 대사였다. 그 다음 성 김 대사는 첫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이번 리퍼트 내정자도 이들 못지않게 독특하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점에서 어떤 전임자들과도 비할 수 없이 특별하다.

 리퍼트는 약속 없이도 언제든 오바마와 만날 수 있고,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측근 중 최측근이다. 오바마는 현재 백악관과 국무부 내에 수백 명의 외교 참모를 거느리고 있다. 하나 2005년 시카고 출신 연방 상원의원으로 취임한 오바마는 딱 한 명의 외교담당 보좌관을 데리고 세상을 누벼야 했다. 바로 리퍼트였다. 두 사람은 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 및 아프리카를 돌며 시간이 나면 일대일 농구를 즐겼던 거다.

 어렸을 적 꿈이 군인이었던 그는 2007년 오바마의 보좌관 생활을 중단한다. 그러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정보 장교로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최근 방한한 프랭크 자누치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그를 “오바마의 막내동생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케네디 대통령의 딸로 세계적 명사인 캐럴라인 케네디 일본 대사도 오바마를 만나거나 통화하려면 미리 약속해야 한다”며 “이런 면에서 리퍼트가 훨씬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리퍼트는 어떤 대사가 될까. 자누치 소장은 “정보의 중요성을 체득한 정보장교 출신이란 점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북한 내에 흘려줌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기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마침 김정은 암살작전을 코믹하게 그린 미국 영화 ‘더 인터뷰’가 올 10월에 개봉된다. “북한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이런저런 루트로 북한 내부에 흘러 들어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정보 전문가인 리퍼트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자못 궁금하다.

 리퍼트의 또 다른 특별함은 유례없이 젊다는 사실이다. 73년생으로 올 41세. 이 탓에 2011년 38세에 국방부 차관보로 지명됐을 때에는 나이에 관대한 미국에서조차 “너무 연륜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니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익숙한 한국 측 인사들이 많으면 스무 살이나 어린 미 대사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중동사태 탓에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한반도 문제가 잊혀져 간다는 우려가 나오는 판이다. 마침 오바마의 막내동생 같은 미 대사가 온다. 그토록 아끼던 최측근이 먼 곳으로 떠나면 그쪽으로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반도에 새삼 관심을 갖도록 할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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