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존의 정치' 기대감 높인 청와대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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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청와대에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은 정치를 걱정하는 국민의 마음을 모처럼 편안하게 해 줬다. 대화와 공존의 정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의제 제한 없이 야당의 생각과 요구를 합리적으로 잘 전달했으며 박 대통령은 마음을 열어 모든 얘기를 경청하고 성의껏 응대했다.

 다수 국민의 스트레스였던 박 대통령의 인사 문제에 대해 박 원내대표가 김명수 교육부·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두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자 박 대통령은 “잘 알겠다. 참고하겠다”고 답변했다. 박 원내대표가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비판하자 박 대통령은 사정을 설명하며 이해를 당부했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가장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제1야당 원내대표와 눈을 맞추며 성실하게 설명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박 대통령은 일부 인사의 임명 재고를 요청하는 야당 대표의 요청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정치 복원의 분위기를 확산시키길 바란다.

 대통령이 관피아(관료 마피아) 혁파 등을 위해 정치권에 요청했던 정부조직법·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처벌)에 대해선 박 원내대표가 공론의 장을 마련해 8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야 여야가 협의하겠지만 처리 시기를 못 박음으로써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스케줄이 그만큼 투명해진 것이다. 인사와 법안 처리 문제에서 박 대통령과 박 원내대표가 서로 주고받는 듯한 모양새는 합의정치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치는 두 개의 진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한쪽의 일방 독주로는 어떤 법안도 처리되지 못하는 만큼 좋건 싫건 합의형 정치가 불가피해졌다. 대통령의 비전과 국민적 호소 역시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치구조가 이렇게 변하면서 야당 역시 비판과 견제만을 능사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야당은 엄연히 책임 있는 국정운영의 한 축이 되었으며, 국정이 파탄 나면 그 책임도 함께 나눠 져야 한다.

 이날 회동에서 남북관계, 4대 강 국정조사, 부자감세, 경제민주화 같은 양쪽의 철학과 가치관이 크게 다른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올랐다. 서로 동의할 수 없다 해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합의형 정치에선 합의할 수 없는 것에 합의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모임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지도자와 정례적 만남을 갖는 건 이례적이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야당이 괜한 선명성 문제 때문에 거부해선 안 될 것이다. 청와대의 일방적 통보로 날짜와 장소를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여야가 먼저 합의해 대통령과 회동을 주도하는 형식이 되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