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미 의원 초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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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하원위원들에 대한 북괴의 평양방문초청과 이를 수락할 것으로 보이는 일부 미 의원의 자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내포된 의미와 앞으로 미칠 영향에 관해 분석,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77년 3월 「카터」행정부의 미 수교국 여행제한 해제조치로 미국시민이면 누구나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나, 북괴의 이런 초청에 상관없이 미국의 대한정잭은 불변이라는 미 국무성의 태도로 보면 외견상 이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북괴가 이 시점에서 미 의원들을 초청한 저의나 계산이 무엇인지, 또 이 초청을 둘러싼 미 의원들과 행정부의 태도는 어떠하며, 그것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에 관해 우리로선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과의 직접 협상만을 고집하면서 3당국 회담안을 거부해온 북괴가 지난 4월 평양 탁구대회에서 대규모 미 탁구「팀」을 맞아들였고 잇달아 미국기자들의 방문을 허용했는가 하면, 북한곡마단의 미국공연을 제의하는 등 대미교류 확대를 꾀하다가 지난 7월 미국의 주한미군철수동결조치가 발표된 후 태도를 바꿔 북한여자농구단의 방미초청을 거부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던 북괴가 이번에 새로 미 의원의 북괴방문을 초청한 것은 종래의 미행정부를 향해 벌여온 접근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른 일종의 기교변화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미·북괴 직접 협상론에 대해 미행정부는 번번이 『한국 참여없는 접촉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미국 내 권력구조로 볼 때 대외정책에 있어 의회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듯한 분위기를 이용하려는 속셈도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괴가 한국의 국내정치정세에 관한 미국의 우려가 표출된 시점에 이런 초청을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한미 이간이 그들의 목적인 만큼 미 의원의 북괴방문 문제를 놓고 한미간 긴장을 조성하여 또 한번 「불변한 관계」로 유도해 보려는 저의가 깔려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한편 이 문제에 관한 미 측의 진의나 자세도 반드시 석연한 것 같지만은 않다.
이 문제에 관한 국무성의 방관적 태도가 무슨 배경을 한자락 깔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북괴를 국제사회에 끌어냄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희망해온 「카터」행정부로서는 자기들의 구상인 3당국 회담안을 북괴가 거부한데 실망하면서도 북괴의 자세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입장이므로 의원들의 평양방문을 내심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를 한국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지렛대로 이용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북괴의 저의나 미 측의 진의는 좀더 시간을 두고 주연할 일이지만 이 시점에서의 미 의원 평양방문은 북괴를 국제사회로 끌어낼 효과보다는 오히려 「실」이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선 어것은 두 나라가 함께 추구해온 남북대화나 3당국회담에 저해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초청이 대남무력통일이란 북괴의 기본전략의 수정없이 나온 것인 이상 이에 응한다하여 북괴를 평화로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미이간을 겨냥한 저들을 대미접근의 허상에만 더욱 집착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 한국에 대한 중공·소련의 상응조치를 예상할 수 없는 단계에서 미 의원들의 북한방문이 이루어지는 것은 남북한의 외교균형 유지에도 도움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이번 문제를 소홀히 다루지 말고 함축된 의미와 성격을 냉정히 분석, 대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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