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패륜 정당" 외침 속 사라진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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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9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실. 서울 동작을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의 전략공천에 밀린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 자고 있었다. 8일 기 전 부시장의 출마 기자회견을 망친 장본인이었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기 전 부시장의 공천을 발표한 지난 3일부터 7일째 당 대표실을 점거하고 있다.

 바로 옆 회의실엔 허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당원 10여 명이 앉아 있었다. 공천 심사 마지막 날인 이날, 이들의 바람대로 동작을 공천은 번복되지 않았다. 허 전 위원장도, 당원들도 소득 없는 농성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허 전 위원장은 기 전 부시장의 회견장에 들이닥쳐 ‘23년 친구’라는 기 전 부시장을 회견장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자신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이런 패륜적인 상황을 만든 게 누굽니까. 김한길·안철수가 책임져야지 왜….”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기 전 부시장은 “저런 절박한 마음을 이해한다”며 조용히 회견장 뒷문으로 퇴장해야 했다. 허 전 위원장은 국회를 빠져나가는 기 전 부시장을 쫓아가며 “기동민 너 거기서! 나랑 얘기 좀 해”라고 소리쳤다. 삿대질하며 쫓아가는 사람과 쫓김을 당하는 사람을 사이에 놓고 양측 지지자들까지 뒤엉켜 보기 드문 ‘육탄전’을 벌였다.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말이다.

 9일 오전 새정치연합의 최고위원회의는 허 전 위원장을 피해 장소도 옮겨야 했다. 전날 같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남성 당직자들은 국회 대표 비서실로 출근하라”는 공지 문자도 당직자들에게 돌았다.

 그는 동작을에 무슨 등기(登記)라도 해놓은 것처럼 말한다. 동작을에서 14년간 출마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2000년 총선 때부터 야당의 공천권은 유용태·이계안·정동영 전 의원의 몫이었다. 2012년엔 이계안 전 의원에게 경선에서 졌다. 이번엔 동작을도 아닌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기 전 부시장에게 공천을 빼앗겼다. 억울하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일주일째 농성과 소란을 반복해 일으키는 허 전 위원장의 태도는 문제다.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던 당원들도 그의 거친 언사와 행동 앞에선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있다. 그가 선거에 도전할 계획이 있다면, 계속 정치를 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처럼 막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정치의 추한 단면이었다.

하선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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