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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범이나 다름없는 김형식의 숨은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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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기
채승기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채승기
사회부문 기자

반바지 차림의 김형식(44·구속) 서울시의원은 웃고 있었다.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살인교사 혐의 피의자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지난달 30일 기자가 마주친 김 의원의 첫 모습이 그랬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강력2팀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경찰 조사 때도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숨진 3000억원대 재력가 송모(67)씨와는 “술 마시고 영수증 갖다 주면 다 계산해주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스폰서’인데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살인 혐의를 받는 친구 팽모(44·구속)씨와 범행 전후 대포폰(선불폰)으로 통화한 것은 “국정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라거나 “의리는 있지만 깡패인 팽씨와의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어느 순간부터 묵비권을 행사했다. 송씨가 용도변경을 원했던 서울 내발산동 소재 순봉빌딩의 증축설계도와 “김 의원이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했었다”라는 건축사의 진술 등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수사 관계자는 “김 의원이 살해 지시의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유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입을 다문 건 경찰과 언론 앞에서뿐이었다. 뒤로는 끊임없이 팽씨를 회유했다. 유치장 안에서 ‘친구야 미안하다. 지금 증거는 네 진술밖에 없다. 무조건 묵비해라’는 내용의 쪽지를 세 번이나 전달했다. 팽씨에게 “미안하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마음이 약한 팽씨를 흔들려는 의도라고 경찰은 해석한다. 실제로 팽씨는 김 의원과 달리 범행 후 매일 밤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두 얼굴은 의정활동에서도 나타났다. 강서구의회의 한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해 “공무원은 쥐 잡듯이 공격하고 주민에겐 무릎까지 꿇어가며 술을 따랐다”고 전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역구민들도 하나같이 “김 의원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묵비권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다. 헌법에 보장돼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단순 피의자가 아니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두 번이나 당선된 정치인이다. 김 의원이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은 친구 팽씨가 아니라 자신을 뽑아준 서울시민이다. 김 의원은 피살된 송씨로부터 5억2000만원 이상, 철도 레일체결장치 회사인 AVT사 대표 이모씨로부터 4000여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권자들을 농락했다. 지금은 입을 다물 때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석고대죄해야 할 때다.

채승기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