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시진핑, 양국 원유·가스 거래 때 ‘달러 배제’ 합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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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가 양국 간 가스·원유 거래에서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태평양 에너지 서밋’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러시아에너지연구원(ERI RAS) 타티아나 미트로바 석유·가스 부문장은 이달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에너지연구원은 러시아 정부의 대외 에너지 정책에 관한 골격을 만드는 기관으로, 특히 미트로바는 ‘러시아의 에너지 브레인’으로 알려져 있다. 중·러의 ‘달러 배제’ 합의는 지난 5월 21일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000억 달러(약 410조원) 규모의 천연가스 거래계약을 체결할 때 함께 논의됐다. 미트로바는 “러시아 산업에서 에너지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등의 제재로 대유럽 수출에 곤란을 겪게 돼)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결제수단으로 위안과 루블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중국이 러시아의 가스를 사주는 데 대해 러시아가 화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양국은 이번에 체결된 410조원 외에 지난해 맺은 350조원 규모의 원유 거래에도 위안과 루블로 결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국제 에너지 거래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74년 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의 합의를 통해 산유국들이 원유 결제 대금으로 미국 달러를 사용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미국은 산업화의 필수 요소인 석유 수요가 전 지구적으로 급증하면서 달러 수요 증가도 함께 누렸다.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전병서 소장은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 금으로 보증되던 달러가 미국과 OPEC 간 합의 이후에는 사실상 석유로 보증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며 “중·러의 이번 합의는 달러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달러 배제’ 합의가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격상시키려는 중국 금융정책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한다. 전 소장은 “현재 위안화의 세계 화폐 점유율은 2% 남짓한데 중국은 이를 30%까지 끌어올려 국제통화에서 ‘달러:유로:위안’의 비율을 4:3:3으로 맞춘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중국으로서는 거액이 오가는 에너지 거래에 위안화의 사용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제 무역에서 위안화로 결제된 누적금액은 4조6300억 위안(약 750조원)이었다. 중국이 위안화 사용 확대에 나서면서 한 해 전에 비해 57%나 늘어난 수치다. 중·러는 이번 합의로 이보다 많은 760조원이라는 거액을 달러 시장과 별개로 사용하게 된다. 익명을 원한 금융 전문가는 “달러를 배제하면 미국이 청산결제를 할 수 없게 돼 달러의 흐름을 통해 각국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던 미국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며 “중·러의 에너지 거래가 단순한 자원 협력 차원을 넘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서밋에 중국 대표로 참석한 쑤칭후아 인민대 국제에너지환경전략연구소 센터장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쑤 센터장은 구체적인 지점과 공사 기간을 밝히지 않았지만 국제 에너지업계에서는 중국의 푸젠(福建)성과 대만 신주(新竹)를 연결 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양측 기업인들은 지난해 11월 난징에서 열린 ‘양안(兩岸) 기업가 고위급 회담’에서 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 두 지역을 거론했다. 2008년 처음 시작된 양안 기업가 고위급 회담은 비정부적 성격의 모임이지만 전략적 대화가 가능한 고위층의 모임이어서 양안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에너지 전문가인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백근욱 선임연구위원은 “양안 문제로 자주 갈등을 빚는 중국과 대만이 가스 파이프 연결에 합의했다는 것은 자원 협력을 통해 국가 간 관계가 전략적 협력 단계로 격상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한국도 에너지 외교를 통해 중·러와 협력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쑤 센터장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에너지 소비·생산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은 에너지 소비의 중심을 석탄·석유에서 가스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에너지원 사용을 늘려 도시를 환경 친화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쑤 센터장은 “지난 5월 맺은 러시아와의 가스 계약도 이러한 구상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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