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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없는 여름방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구장이들에게 이번 여름방학은 어느해 보다도 신나고 즐거운 방학이 될 것 같다. 오는 20일께부터 시작되는 초·중·고생들의 여름방학은 숙제를 아예 없애거나 대폭 줄이라고 문교당국이 시달했기 때문이다.
당국의 「숙제없는 방학」실시에 관한 세부내용을 보면 중학생에게는 과학과목만 과제로 주고, 국민학생에게는 일체 과제를 내주지 않는 대신 탐구생활을 권장토록 하였다.
한창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정상적인 학교수업말고도 과외다, 특기교육이다하여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작금의 교츅풍토에 비추어 여름방학동안이나마 타율적 공부의 중압으로부터 해방시키기로 한 것은 후련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어린 자녀들이 감당키 어려울만큼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고 밤늦도록 숙제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격심한 학력경쟁을 이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가엾고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심경이리라.
학교에서의 수업내용은 논의로 치더라도 방학과제나 일상적인 숙제가 그동안 너무 과중하고 형식에 치우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컨대 어느 단어 하나를 외우도록 하기 위해 열번, 스무번 써오도록 한다거나, 각 과목별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매일처럼 숙제를 낸다는 것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성을 갖게 하기보다는 한낱 기계적인 사고, 틀에 박힌 인간형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만을 면치 못했었다.
이같은 현실적인 숙제의 중력때문에 어린이들의 건전한 성장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가를 이제는 학부모들 뿐만아니라, 성인사회전체가 문제로 삼아야할 때가 온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숙제를 한아름 안고간 어린이들은 특히 과학·기술·예능교과등 반드시 스스로 행하는데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과목에서도 공작·수예·그림등을 형이나 누이 또는 부모들이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무의미하고 어린이들의 전학습과정에 유익하지 못한 일을 언제까지 되풀이 해야 겠는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공부」라고하면 으례 교과서와 공책위주로만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낡은 교육제도의 잔재로 넓고 새로운 우주가족시대를 살아갈 새세대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탈피해야 할 일이다.
「공부」의 뜻은 교과서나 공책보다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몸소 무엇인가를 행함으로써 저마다의 독자적인 경험을 쌓게 하는데서 찾아야 하며, 그것이 미래를 내다본 올바른 방향실정이다.
여름방학에 숙제가 없다해도 어린이들은 그들나름대로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주어진 시간을 보낼 것이며 마음껏 뛰어놀고 쉬는 가운데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융통성있는 인간이 형성된다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학교공부고 숙제고 엄마의 성화를 받아야만 수동적으로 해나가는 습관이 든 어린이라면 당장은 성적이 오를지 몰라도 길게 보아 사회의 유용한 역군으로서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산과 바다, 들과 시냇가 어느 곳이건 살아있는 교장이다. 땀흘려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보면서, 장엄한 자연의 조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마음껏 뛰노는 가운데 어린이들은 몸도 마음도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이다.
「오일·쇼크」가 밀고온 긴축바람이나 계절적인 무더위에서 어린이들이 행여 멍들거나 찌들지 않도록 보호벽을 쳐주고 마음껏 뛰어노는 가운데 호연지기를 길러주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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