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사회의 민간신앙에는 그냥 미신이라 속단하여 타파해 버리기에는 아쉬운 것들이 없지 않다. 미신이란 『이치에 어긋난 것을 망령되게 믿음. 혹은 종교적·과학적인 견지에서 망령된다고 인정되는 신앙』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그러한 범주에 일괄 처리해 버릴 수 없는 것에 금줄이 있다.
금줄은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악귀막이의 주술적 금기를 목적으로 하는 술이다. 출산했을 때 세이레(21일간) 혹은 일곱이레(49일간)동안 사립문에 건너질러 쳐 놓는 새끼줄로서 탄생한 아기의 성별까지 표시한다. 비단 아기의 출산에만 그치지 않고 돼지 새끼를 낳았을 경우도 우리 앞에 친다.
모 돌림병(유행병)의 환자가 생겼을 때도 문전에 치고 장(장)을 담근 항아리의 가장 자리에 물러 놓기도 한다. 신성한 장소, 위험한 곳임을 표시할 때도 사용한다. 금줄에는 빨간 고추나 숯 또는 백지를 잘라 달기도 하는데 이는 악귀를 막는다는 「샤머니즘」적「터부」의식에서 행해졌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볼 때 비과학적이라고 일소에 붙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산고가 들었을 때엔 산모의 안정요양을 필요로 함은 물론, 연약한 새 생명체의 보호를 위해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돼지새끼를 낳았을 때나 장을 담가 놓고 접근을 금지하는 일, 전염병이 만연할 때 또는 신성한 곳, 위험한 곳의 출입이나 통행을 금지, 제한하는 일은 과학적이고 인도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몽매한 사람, 문맹자가 많은 미개사회였기 때문에 교훈이나 예방, 금지 등 생활상의 행동지표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표시했을 따름이다. 우리 정부 수립이후 60년대까지만 해도 선거 때 입후보자의 이름 위에 표시했던 작대기 기호(ⅠⅡⅢ…)도 거기에서 오십보 백보다.
오늘날에 와서는 「산고가 들었으니 외인 출입을 금함」「위험! 출입금지」등 글로 써놓아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만큼 민도가 높아졌으니 구태여 재래식 금줄이나 작대기 기호를 사용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점은 글로 표시한 금지나 규제 등의 효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데에 있다. 몇 년전 설악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육담폭포에서 실족사를 했었다. 그때 경비를 맡고 있다는 한 중노인이 내뱉는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글을 모른다니까,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한글로 분명히 써 붙였는데 들어가서 죽었단 말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새끼줄을 치고, 그 새끼줄에 한글로 쓴 목판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외로 꼬아 빨간 고추, 까만 숯, 하얀 종이를 달았던 옛날의 금줄에 비해 글로 써 놓은 현대의 금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알게 된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모르면서도 시키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 재래식 금줄의 주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