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줄의 참뜻 - 박홍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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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전통사회의 민간신앙에는 그냥 미신이라 속단하여 타파해 버리기에는 아쉬운 것들이 없지 않다. 미신이란 『이치에 어긋난 것을 망령되게 믿음. 혹은 종교적·과학적인 견지에서 망령된다고 인정되는 신앙』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그러한 범주에 일괄 처리해 버릴 수 없는 것에 금줄이 있다.
금줄은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악귀막이의 주술적 금기를 목적으로 하는 술이다. 출산했을 때 세이레(21일간) 혹은 일곱이레(49일간)동안 사립문에 건너질러 쳐 놓는 새끼줄로서 탄생한 아기의 성별까지 표시한다. 비단 아기의 출산에만 그치지 않고 돼지 새끼를 낳았을 경우도 우리 앞에 친다.
모 돌림병(유행병)의 환자가 생겼을 때도 문전에 치고 장(장)을 담근 항아리의 가장 자리에 물러 놓기도 한다. 신성한 장소, 위험한 곳임을 표시할 때도 사용한다. 금줄에는 빨간 고추나 숯 또는 백지를 잘라 달기도 하는데 이는 악귀를 막는다는 「샤머니즘」적「터부」의식에서 행해졌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볼 때 비과학적이라고 일소에 붙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산고가 들었을 때엔 산모의 안정요양을 필요로 함은 물론, 연약한 새 생명체의 보호를 위해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돼지새끼를 낳았을 때나 장을 담가 놓고 접근을 금지하는 일, 전염병이 만연할 때 또는 신성한 곳, 위험한 곳의 출입이나 통행을 금지, 제한하는 일은 과학적이고 인도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몽매한 사람, 문맹자가 많은 미개사회였기 때문에 교훈이나 예방, 금지 등 생활상의 행동지표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표시했을 따름이다. 우리 정부 수립이후 60년대까지만 해도 선거 때 입후보자의 이름 위에 표시했던 작대기 기호(ⅠⅡⅢ…)도 거기에서 오십보 백보다.
오늘날에 와서는 「산고가 들었으니 외인 출입을 금함」「위험! 출입금지」등 글로 써놓아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만큼 민도가 높아졌으니 구태여 재래식 금줄이나 작대기 기호를 사용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점은 글로 표시한 금지나 규제 등의 효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데에 있다. 몇 년전 설악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육담폭포에서 실족사를 했었다. 그때 경비를 맡고 있다는 한 중노인이 내뱉는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글을 모른다니까,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한글로 분명히 써 붙였는데 들어가서 죽었단 말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새끼줄을 치고, 그 새끼줄에 한글로 쓴 목판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외로 꼬아 빨간 고추, 까만 숯, 하얀 종이를 달았던 옛날의 금줄에 비해 글로 써 놓은 현대의 금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알게 된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모르면서도 시키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 재래식 금줄의 주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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