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감추고 숨기고 연극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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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 새끼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데, 이유는 들어봐야죠. 죽어도 좋으니 아들 좀 만나게 해줘요. 제 애비 쏠 놈도 아닙니다.”

 무장 탈영병과 군인들의 대치 상황. 그곳으로 한 남자는 달려가고, 군인들은 그를 막고. 그 남자는 탈영병의 아버지였다.

 방금 전까지도 같이 먹고 같이 자던 동료에게 총을 쏜 자나, 살해된 자나, 복무 중인 군인들이나. 부모 심정은 매한가지일 게다.

 이제껏 잘 참아왔는데.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유가족이 말한 ‘내 아들 죽인 임 병장도 불쌍하다’의 의미는 또 뭘까.

 임 병장은 관심병사였다. 신체검사에는 통과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할 경우 위험수위에 따라 A, B, C등급으로 매겨 관리하는 병사를 관심병사라 한다. 이렇게 분류된 병사들. 주눅 들고 왕따 되고. 날이 가면 갈수록 군 생활 적응하기는 더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이번 총기사건을 통해 궁금한 것은 ‘군대의 투명성’이다. 특성상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금쪽같은 아들을 군대 보내놓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몇 명이나 자살하고 사고를 당하는지, 매는 안 맞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사건 날 때마다 수시로 말 바꾸는 군의 진실게임. 국가 개조에 이것도 포함시켜야 되지 않을까.

 이송 과정에 가짜 환자 대역까지 써가며 연극까지? 이동침대를 들고 있던 출연진들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도 아니다. 병원 측 요청이다? 아니다? 아님 제3자의 요청? 도대체 뭐가 진실인가.

 사건 실마리를 풀 메모장도 비공개라? 유가족 요청이다? 아니다? 아들은 죽어 없는데, 더 잃을 건 뭐고, 새삼 두려울 게 뭐라고 감추겠나. 이판사판 속 시원히 다 까발려, 저승길 가는 자식 피 맺힌 한이라도 풀어주지. 무슨 은밀한 비밀이라도?

 하긴, 사람 데리고도 연극하는 판에 메모장 가지고 무엇인들 못할까.

 5명이나 죽어 나간 위급 상황에, 관심병사들 손에 총알 없는 빈 총을 쥐여 주며, 무장 탈영병 수색을 시켰다고? 교전이 발생하면 지휘관이 그때 탄창을 주려 했단다.

 총알은 날아오고, 우왕좌왕 탄창 나눠주고, 부들부들 떨며 총알 끼우고, 조준을 한다? 그 순간에 그게 가능할 거라 믿는다고? 그게 관심병사를 위한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이라는 건가. 감추고 숨기고 연극하고.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 궁금하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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