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의 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둘째는 사실치레/그 직차 득음이요/그 직차 너름새
작곡가 신재효의 광대가에 나오는 한 귀절이다. 판소리 작곡가가 갖추어야할 기본 조건들이다.
인물은 타고나야 하니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 작고한 명창 박연주 여사도 벌써 12세 어린 시절에 사사를 시작해 회갑을 지내고야 비로소「인간문화재] 가되었다.
타고난 인물이라도 명창의 길은 전생의 업이다.·
『…미부인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밖에 나서는 둣/새눈 뜨고 웃게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광대가」는 사세의 어려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너름새」라는 것도 천태만상·천태만화의 음성으로 극적인 효과 자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악과 가곡이 구중심처. 권력의 그늘에서 보존되어 왔다면 판소리는 재인·무인 출신의 광대들이 양반의 천대를 받으며 오직 서민의 공감과 체온 속에 그 명맥을 지탱해왔다.
어느 명창이 「춘향가」를 불러 탐관오리 변학도의 대목에 이르면 청중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곤 한다.
춘향의 옥중가에 이르면 함께 흐느끼고, 이도령의 어사가 출두하면 고수의 『좋다!』 『얼씨구!』『흉!』 하는 감탄사에 어깨를 들먹이며 청중들은 어화지화 신명을 내는 것이다.
판소리는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일자타령, 배비장타령, 심청가, 흥부가, 토끼타령, 춘향가, 화용도.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옹고집 등 모두12마당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외설이나 너무 황당한 것들도 있어 많이 자연도태 되고 말았다.
육당 최남선의 설명에 따르면 광대소리의 ?조는 거처를 알 수 없는 하한?과 이름이 분명치 않은 결성의 최선달이 있다. 이들의 판소리가 정조 조에 이르러 권삼득에 의해 전주·익산에서 탁월한 솜씨로 소리의「제」를 소화했고 다시 이어 순단조에 신오술이 고창에 나서 모본음 연마해 그 예술적 지위를 한층 높였다.
따라서 명창은 호남출신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명창들은 김소희· 김여난· 정광수· 박초월· 정권섬· 박봉구· 박동진· 한갑주 등이 있다. 김주희 등 명창을 기른 박연주 여사는 이제 저승의 사람이 되었다.
시속과 함께 아쉬운 것은 당대의 명창들이 사라지면 그 소리도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 것을 아끼는 마음이라면 명창들의 채보사업에 더 성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