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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사가 주홍글씨여서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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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지난 25일 오전 11시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에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병사들로 넘쳤다. 휴가를 나왔거나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중이었다. 병장을 골라 접근했다. 부대 생활을 오래 해서 관심병사의 실태를 잘 알 것 같아서였다. 병사 8명에게 말을 붙였지만 4명은 “휴가 나올 때 단단히 주의를 받고 나왔다”며 말을 아꼈다. “관심병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들도 “그렇다”고 답했지만 자세한 얘기는 피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일부 병사는 “휴가 중 부대에서 함구령을 명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함구령으로 관심병사 문제가 가려질까.

 지금의 병사들은 입대 전에 집단생활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해외 유학 중 입대하거나 해체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늘었다. 사회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군대니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지금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 한 전직 장성은 “관심병사 문제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관심병사제도의 취지는 좋다. 평소에는 지휘관이 관리하고, 증세가 심하면 그린·비전캠프로 보내 치유한다.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좋지만 이게 낙인 도구로 전락하면 왕따(집단 따돌림)와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관심병사로 분류되지 않아도 다소 행동이 굼뜨거나 함께 어울리지 못하면 관심병사로 놀리기도 한다. 동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실제로 소대장-분대장-분대원 순서로 공개되기 일쑤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전역한 한 예비역 병장은 ‘제2의 임 병장’과 유사한 경험담을 전했다. 한 관심병사가 선임의 괴롭힘을 참지 못해 “선임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행정보급관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사건화가 안 됐을 뿐이지 곳곳에 뇌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GOP(일반전초)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임 병장처럼 극단적 행위를 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휴가 마지막 날 농약을 사서 마시려다 발각된 병사도 있다.

 무기와 장비만 첨단화한다고 군사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 그걸 다룰 병사가 안으로 곪는다면 첨단 장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병사들의 정신건강 투자가 곧 군사력 증강이고, 안보 강화다. 민간부문에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가 넘친다. 이들을 전문 상담원으로 끌어들여 병사들을 보듬어야 한다. 관심병사 중에는 정신과 전문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문의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관심병사 정책에 국방부 의무 파트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방부대 지휘관 선에서 관리하기 힘든 관심병사는 후방으로 배치하는 등 보직 이동을 원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 관심병사 문제는 ‘함구령’이 아니라 근본 처방으로 풀어야 한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