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시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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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래로 방천한다』는 속담이 있다. 어설픈 일로 헛수고 한다는 풍자다.
요즘 영국「서섹스」대의 한 연구원이 세계은행에 제출했다는 『교통 및 종합계획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 제문제에 관한 보고서』에 비친 서울의 도시계획은 바로 그 속담을 연상시킨다.
이 보고서는 한마디로 서울시가 추진해온 여러계획들이 거꾸로 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구분산이 인구집중으로, 교통완화가 교통혼란으로, 도시의 중심기능이전이 새로운 혼잡으로.
불과 8주간의 현지조사로, 더구나 생활감각이 없는 외국인의 보고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는 물론 이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 도시계획의「통념」을 뒤집어 생각하는 전문가도 있다는데에 문제를 찾아 볼수 있다.
이 보고서는 오늘의 교통혼잡이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나 도로부족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하고있다. 그보다는 도시계획의 실패와 기능분산시책을 문제로 삼았다.
종래의「통념」을 깨뜨리는 이런 주장도 있다. 전인구의 20%가 몰려 살고 있는 서울이 국민소득의 30%를 창출하는 현실에서 그 능력과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은 오히려 국가발전을 문화시킨다는 것이다.
한편 도로율의 확대도 교통량의 증가율을 「커버」할 수 없는한, 별의미가 없다고 지척했다. 이것역시 「불도저」식 도시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충고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곁들여 시민들의 일상적인 불평이나 의문까지도 도시행정가들은 하나의 진지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근 어느 동네의 주민들이 당국에 진정한 문제도 그 하나의 사례가 됨직하다. 서울시 당국은 어느 지역의 도로확장계획을 세우면서 그 북쪽을 철거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실제의 고시는 남쪽을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주민의 불평이 없을 수 없다.
어느 고도건물들은 건축허가를 받고 이미 골조공사를 끝마친 마당에 층삭의 제한요구를 받기도했다. 행정의 난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도시는 미관과 기능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백지의 황야에 새도시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생존의 장」으로 먼저 시작된 그 터전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은 예사로운일이 아니다.
문제의 보고서도 「연구와 조정이없는 시책」을 비판하고 있다.
아직도 늦지는 않다.『기름엎지르고 깨를 줍는 식』의 도시계획은 다시 작구와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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