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서울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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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 유명한 「키신저」박사가 서울에서 사흘이나 묵고 떠났다.
『30분을 만나도, 알맹이있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주은래의 말]는 그가 서울에선 『말의 성찬』을 유감없이 베풀었다.
의전상의 예우도 깍듯이 받았다. 화려한 인사들도 거리낌없이 만날수 있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지는 그를 두고 『만년국무장관』·『미국의 제사부』라고 했었다. 야인 「키신저」의 잠재력은 여전히 미국외교정책의 불꽃으로 남아있다는 뜻이리라.
하긴「키신저」는 권좌를 떠나고나서도 「카터」행정부의 중요정책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키신저」의 처세술은 상대로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유대계이민독일인·미국에서의 고학생·육군2사병·대학교수·백악관보좌관·국무장관·「닉신저」[「키신저」의 별칭]. 그의 화려한 출세의 문들은 자신이 두드려 열기보다는 상대방에서 활짝 열어놓고 맞아들이는 형식이었다.
1967년12월10일「뉴욕」5번가의 한「아파트」에서 사교사「클레어·A·루스」여사[극작가]의 최대로 「닉슨」과 첫 대면한것도 역시 그런 처세술의 산물이었다.
상황에 맞는 실력과 정보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쪽은 반드시 「스카우트」를 하려든다는 것이 이른바 그의 「역스카우트」출세술이다.
『내가 성공한 것은 우선 첫째로 내자신이 독불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사람은 혼자서 말타고 거리에 뛰어드는「카우보이」에 박수를 보낸다.』「키신저」의 술회다.
요즘 그가 일본·중공·「인도네시아」·「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온것도 필경 그의 기발한 처세술의 하나일지 모른다.
사실「키신저」는 재임중 중공의 밀구를 열고 월남전을 수습하고 나서는 중동외교에만 매달려있었다. 「아시아」문제는 차라리 어깨너머로 보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아시아」로 발길을 돌려 여유있게「정치산책」을 즐기는 것은 최근 미국외교의 눈길이「아시아」로 쏠리고 있는것과 무관하진 않을것 같다.
「키신저」는 그의외교술에있어서도 그랬지만 출세에 있어서도「링키지[연결]를 중요시한다.
끊임없이 무엇과연결을 지음으로써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려는 것이다. 「아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면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의 서울체류중 한국에 관한 언급들은 역시 구수한 말들. 말하는쪽도 손해없고 듣는쪽도 기분나쁘지 않다. 그가 탁월한 외교관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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