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원래 정, 도로 정 그리고 새로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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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물벼락을 맞고 식물인간이 됐던 총리가 60일 만에 부활했다. 두 번이나 눈감는 듯했는데 기적처럼 일어섰다.

지금 같아선 누굴 내놔도 별 수 없다는 청와대의 상황 인식도 맞고, 총리 하나 내지 못하는 무능정권이라는 야당 주장도 틀리지 않다. 둘 다 유죄다. 두 달 동안의 국론 분열과 국정 공백 책임을 여야가 똑같이 나눠 져야 한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총리 임명보다 더 시급하고 위중한 일을 100개쯤은 숨 안 쉬고 꼽을 수 있는 우리 아닌가. 그간의 세월이 국가 개조를 진두지휘할 ‘총리 찾아 삼만 리’였다면 이제 청와대도 마음을 먹어야 한다. ‘원래 정’ 총리에겐 없던 실질적 권한을 ‘도로 정’ 총리에겐 나눠줘야 한다는 얘기다. 야당도 뻗은 다리를 그만 접고 국정 운영에 협조하는 게 좋겠다. 말 그대로 무능한 정권이라면 야당이라도 협조해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늘 앞세우는 국민을 위한 길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부활 총리다. 한 번 치른 목숨, 지금부터는 덤인 셈이다. 전과 같아선 안 되는 이유다. “차디찬 물속에 아이들이 있는데 물세례쯤 수천 번 맞아도 모자라다”라고 하지 못했던 자신을 뼈아프게 반성했다면 거듭날 수 있을 터다. ‘원래 정’도 ‘도로 정’도 아닌 ‘새로 정’으로 말이다.

 실권이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항변하려면 당장 그만두는 게 낫다. 대독(代讀) 총리를 다시 하겠다고 냈던 사표를 돌려받은 건 아닐 거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식 오기정치의 희생양밖에 남은 자리가 없다. 많은 입들이 제도를 탓하지만 문제는 늘 제도 아닌 사람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서 대통령의 온갖 허물을 다 품고 6년7개월 최장수 총리를 하는 사람도 나오고, 소신 다른 대통령에게 맞서다 4개월 만에 대쪽처럼 쪼개지는 총리도 나오는 거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그랬다.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패한 그는 승자인 케네디한테서 부통령 제의를 받는다. 보좌관은 “부통령보다는 현직인 다수당 원내총무가 큰 권력”이라고 반대했다. 그때 존슨이 말했다. “권력이 가는 곳에 권력이 있는 거야.”

부통령으로서 케네디 암살 후 대통령 직을 승계한 존슨은 압도적 지지로 재선됐다. 존슨 같은 마음가짐으로 민심을 달래고 국가 틀을 바꿀 개혁총리가 될지, 수명만 연장한 식물총리로 남을지는 총리 본인에게 달렸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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