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산사건과 금융의 중립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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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율산사건은 급기야 이나라 금융사상 처음으로 4명의 은행최고간부를 인책사퇴시키고 한사람의 행장이 구속되는 사태로까지 발전되었다. 우리는 이런 사태진천의 진정한 함축이 무엇인지와는 별도로 이런 귀결이 결코 짧지 않은 우리의 금융사에 또하나의 큰 상처로 남게 될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반석같은 공신력과 신용을 생명으로 삼고있는 오늘의 금융인·금융기관이 이런 사태에까지 몰리게 된 것은 어떤 연유든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현재도 수사가 진행중인 율산사건 자체에 대한 논평은 유보하기로 하거니와 이사건을 계기로 오늘의 기업·금융·권력풍토가 어떤 맥락으로 연계되고 있으며 이런 연계가 이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사회적 병리와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지를 규명하는 노력은 매우 긴요하다고 본다.
대형 금융부조리의 진정한 교훈이 몇사람의 제물로 얻어지는 「카타르시스」로 호도되는 전철을 못벗어나는한 금융풍토의 정화나 금융부조리의 척결은 영원한 숙제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오지 않았는가.
보는 시각에 따라 이번 사건은 여러갈래로 진단되고 있으나 한마디로 그것은 이 시대 우리 두회의 전형적산물인 동시에 일면 불가피한 귀결이기도 하다.
정치나 행정의 힘이 조세이외의 방법으로 자원의 배분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관행이 개발정책의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기업이 그런 관행을 역이용하도록 방임되는 풍토하에서는 언제나 금융이 제물화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혹자는 특히 문제된 수출금융제도의 결합을 중요시하나 아무리 제도를 완벽하게 개선한다 해도 금융의 중립없이는 모두가 구두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의 중립은 교조적 원리나 교과서적인 이상이 아니라 자원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요청이라는 점에 모두가 유의하자. 율산사건의 참된 교훈은 이단순한 이치를 새삼 확인하는데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는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거나 오히려 비효율일때도 있으며 특히 개발의 초기단계에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능력이 축적되고 민간부문이 자전력을 가지게된 성숙단계에서는 각종시장의 타율이 질곡으로 바뀌고 종국에는 대형 부조리에서 보는 낭비와 비효율을 낳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금융의 중립은 제도의 문제이기 훨씬 이전에 힘의 윤리와 연관되는 문제이므로 힘의 중립과 금융의 중립은 서로 표리관계를 이룬다.
정치나 행정의 힘이 민간자원의 분배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를 자제한다면 이나라 금융·기업풍토는 새로운전기를 맞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대해진 각종명목의 정책자금비중을 크게 줄이고 금융이 자기계산과 책임하에 운용하는 부분을 확대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수출이다, 중화학이다하는 성역을 없애고 금융을 금융인에게 돌려줄때 비로소 참된 율산의 교훈이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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