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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안 올라도 학원 다녀야"…하위권일수록 사교육 의존도 높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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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학생들은 정말 필요해서 갈까, 아니면 그저 타성에 젖어 다니는 걸까. 특히 수학은 중·고교 학생들의 사교육(학원·과외) 의존도가 가장 높은 과목이다. 대부분이 수학 학원을 다니지만 “확실하게 효과를 봤다”고 선뜻 나서는 학생은 많지 않다. 확실한 계획과 목적을 갖고 효율적으로 학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단지 불안해서 학원에 기대는 학생이 적지 않은 탓이다. 한마디로 학원에 끌려다니는 셈이다. 학원밀집지역인 서울 강남·목동 지역 중·고교생의 학원 의존도를 분석해보니 이런 현상이 뚜렷했다.

15개 수학학원 연합연구소인 수학섬(Math Island) 수학연구소와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 유재명 박사는 지난해 4~6월 서울 강남·목동 지역 중·고생 562명을 대상으로 ‘수학 자기주도학습 진단 테스트’를 진행했다. 김성태 수학섬 수학연구소 대표는 “학원 의존도를 물어본 12개 항목에서 각 항목별로 응답자 중 적게는 7.2%에서 많게는 50.2%까지 학원에 의존적이라는 답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학원을 다니면 공부를 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라는 질문에 562명 중 221명(39.3%)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학교 수업을 중심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217명(38.6%)이 ‘그렇다’라고 말했다. 또 ‘성적이 오르지 않더라도 학원은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엔 162명(28.8%)이 ‘그렇다’고 했다. 개념이 부족한 특정 단원을 보충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목적과 계획 없이 상당수 학생이 그저 불안한 마음에 학원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성적이 낮은 하위권으로 내려갈 수록 더 뚜렷했다. 조사대상 562명을 성적에 따라 구간을 구분하고 학원 의존도 조사 항목 12개의 점수를 종합해 100점 기준으로 환산해봤다. 상위 1%(6명)는 30.5점을 기록한 반면 하위 5%(28명)는 40.1점으로 나타났다. 하위권으로 내려갈수록 학원 의존도가 확실히 높았다. 김 대표는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숨어있다”며 “하위권 학생들이 ‘성적하락→학원등록→스스로 계획하고 공부하는 기회 차단→자기주도학습 능력 저하→학원 뺑뺑이’의 악순환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홍창섭 서울 경희고 수학교사는 “학원이 잠깐 성적을 올려줄 수는 있겠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효과는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며 “결국 자기주도학습능력을 길러야 학원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수학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기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대표는 “우선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지’라고 막막하게 접근하지 말고 가장 관심있는 한 단원을 뽑아보라”고 권했다. 범위를 좁혀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더 수월하다는 것이다. 단원을 골랐다면 자신의 수준을 알고 있는 학교 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해 추천 교재 목록을 받는다. 교재 선택 후엔 해당 단원을 며칠 동안 공부할 지 계획을 세운다. 김 대표는 “이때 최종 교재 선택과 공부일수는 반드시 학생 스스로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며 “내용이 좋은 교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인·구성 등 자기에게 맞는 교재를 고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계획한 공부일수 뒤엔 테스트를 한다. 홍 교사는 “혼자 힘으로 해보는 경험이 쌓이면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고, 학원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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