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의 과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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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가계의 소비·저축구조에 관한 산업은행의 최근 조사 결과는 소득의 배분과 지출에 관련된 몇가지의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어 흥미롭다.
최근 3년간의 가계소득과 지출구조변화를 분석한 이 자료는 소득이 높을수록 소득증가율마저 높은 반면 저축증가율은 오히려 거꾸로 낮아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조사가 시사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내가계의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고소득층의 소비억제와 저축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가지 시사는 모두가 심각한 반성의 자료지만, 특히 전자의 경우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개발의 성과가 지나치게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온 바 있으나 정책당국자들은 전통적으로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 소득집중도가 낮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 방면의 실증적 연구가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지만 통계적 유의성에 많은 이론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처지에 있지 않다.
다만 이번 산은조사가 70년대 중반 이후의 급격한 소득구조변화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이 자료에 나타난 바로는 저소득층의 3년간 소득증가율이 4.5%인데 비해 중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그것은 9.8%, 17.5%에 이르러 소득격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저임방치에 따른 임금소득의 양극화나 노동소득과 자본내지 재산소득과의 불균형을 반영하며 조세등을 통한 재분배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거나 이를 조장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자료가 밝힌 또하나의 문제는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이 너무 높은 점이다. 통상적으로는 소득이 높을수록 저축이 많아지는데도 지금의 현실은 그 반대라니 여간 심각하지 않다. 이는 곧 최근 만연되고 있는 소비풍조가 고소득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세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특정 소득단계에서 소비구조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너무 비정상적이다. 원천적으로 낮은 국민저축율에다 비교할 수 없이 저수준인 가계저축의 바탕위에서 소비만 계속 늘어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만연한 「인플레」와 수입개방과정이 겹쳐짐으로써 전시소비와 사치성소비가 격증하고 있는점이다. 저축심리 비교에서 이웃에 비해 소득이 높다고 생각하는 가계의 저축율이 훨씬 처진다는 통계도 이런 전시적 소비성향의 한단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여러가지 자료들은 결국 현재 범국민적으로 추진하려는 소비절약·저축운동의 핵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자료들이다. 따라서 막연한 구호로 명확한 대상 설정도 없이 절약운동을 펼것이 아니라 정부는 재정면에서 절약을 수범하고, 소비 조장적 정책을 지양함으로써 여타 부문의 절약·저축을 유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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