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소라 “이렇게 불온한 음악을 앉아서 부를 수 있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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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45)가 8집 앨범을 공개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렇게 불온한 음악을 앉아서 부를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소라는 줄곧 앉아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객석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지만 그의 노래는 블랙홀처럼 엄청난 흡인력으로 관객을 빨아드리곤 했지요. 그런데 8집은 단순하게 말해서 록 앨범입니다. ‘쳐’ 같은 노래는 록 페스티벌에서 부를 법한 헤비메탈 곡이고요. 저는 드디어 그가 관객과 함께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20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이소라의 8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소라는 1시간 반 정도 이어진 단독 공연에서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휘몰아치는 밴드 사운드를 환호성 한번 지르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기분 말입니다.

이소라는 태풍의 눈이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폭발 직전이었지만 그는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채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기타 소리를 뚫고 이소라의 가공할만한 가성이 넓은 공연장을 감염시켰습니다. 그 광경은 록 음악이라는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뭔가 섬뜩하면서도 독창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좀 멈춰라 사랑아’ ‘쳐’ ‘흘러 All Through The Night’로 헤비한 곡들이 미동 없이 이어지는데 그 위력에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공연 초입에 ‘처음 느낌 그대로’부터 ‘제발’ ‘바람이 분다’까지 과거 히트곡을 연이어 불렀지만 신곡의 날카로움엔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소라는 올 4월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 한 번도 자신을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자 초청 음악감상회에도 나타나지 않았죠. 우리는 그의 낯선 앨범을 덜렁 받아들고서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콘서트에서 (말을 많이 하면 노래가 안 된다며) 이렇게 짧은 말을 남겼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데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물이 없으니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6년마다 1장씩 앨범을 내더라도 노래 부르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 깊숙이 들어가서 나를 발전시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우리가 만약 어떤 음악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래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주변의 공기를 잊게 하는 망각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치유되는 것을요. 이날 이소라의 노래가 제게 그랬습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 포츈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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