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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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이 바로 우수란다 오, 보름만 지나면 또 개구리가 봄소리에 놀라 잠을 깨는 경칩이고….
시젯말로 하자면 여전히 계절의 「리듬」에는 가히 써 어긋남이 없는가 보오.
과연 아침부터 햇살이 맑고 하늘에는 온통 꽃구름이 피어 있고, 그리고 온 몸이 나른하게 느껴지는 품이 완연한 춘색.
하기야 언제 또 하늘이 심통을 부려 땅을 얼리고 눈을 내려 놓을지는 알 수 없소.
버릇이란 무서운 것이라서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고 봄은 아지랭이가 곱게 펴야 봄다와 보이는 법.
하나 하늘이 노망한 탓인지 삼한사온의 조화도 잊고 추위마저 시원찮던 지난겨울이었거늘.
오늘이 우수라한들 정녕 이제부터가 봄이라 아무도 기약할 수야 없지 않겠지요.
그래도 옛 어른들이 공들여 만든 달력에 틀림이 있을 까닭이 없겠거늘-
오늘이 입춘하고도 보름이 지났다면 어김없는 봄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지 않겠소.
만사엔 믿음이 제일이라 비록 어둔 밤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겨울눈이 다 녹자면 아직도 여러 날을 더 지새워야 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제부턴 봄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노라면 정녕 잔뜩 먼지를 쓴 하늘도 밝게 보일 것이요.
그러자면 또 어느덧 움츠렸던 어깨도 활짝 펼 수 있게되고 웃음도 되찾게 될게 아니겠소.도시 인생살이란 생각하기에 달려 있고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하거늘, 춥잖은 겨울로 김장맛을 잡쳐버렸다해도 『산채도 일렀으니 돌나물 캐어먹세/고돌기 씀바귀요, 소르쟁이 물쑥이라/달래김치 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이렇게 농가월영가에서도 노래하고 있잖소.
그러한 새맛을 보이기 위해서도 봄이 사뿐거리며 하루라도 빨리 다가온다면 여간 반가운게 아닐 것이오.
소식은 춘소일각직간금이라 노래한적이 있소.
일각이란 요새 시계로는 한 15분쯤 된다고 치면 그게 천금이라면 봄날 한창 일하는 대낮의 15분은 만큼이 넘는다고 해야할게요.
세월이란 흐르게 마련.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그리고 또 여름이 되는법.
이런 순리를 일깨워 주듯 오늘 몹시도 화사한 옷차림으로 우수가 다가왔다오. 이 아니 반갑잖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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