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그 남자의 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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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30면

나는 한 남자의 귀야. 이렇게 말하면 상상이 잘 안 될 테니 편의상 그 남자를 김상득이라고 하자. 사실 그의 이름이 김상득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52년째 그 김상득이란 남자의 머리통 양 옆에 붙어서 소리를 듣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불화가 없진 않았지만 남자와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왔어. 더러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었지. 어렸을 때 그는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였는데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그를 혼낼 때면 애꿎은 나를 잡아당기거나 비틀곤 했기 때문이지. 겨울날 추운 줄도 모르고 바깥에서 뛰어 노는 그 아이 때문에 내 몸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어. 여름날 물장난 치느라 내 몸에 물이 잔뜩 들어와 한참을 앓았을 때는 그를 원망하기도 했어.

물론 좋을 때도 많았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야. 그가 나란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어디선가 사람도 귀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한 달 동안 내게만 집중했던 때가 있었거든. 노력 끝에 한 달 후 그는 나를 움직일 수 있었어. 아니, 손바닥처럼 폈다 접었다 한 것은 아니고 아주 조금 미세하게 위로 당길 수 있었지. 그게 뭐 대단한 묘기라고 어찌나 그가 자랑하는지 내 온몸이 다 빨개졌다니까.

사춘기 즈음 그가 빗소리에 내 몸을 기울이거나 음악 앞에서 내 몸을 열었을 때도 좋았어. 가끔 나와 둘만 있을 때 그가 가만가만 내게 시를 읽어줄 때는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머리통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기뻤어.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청년의 그가 연애할 때였어. 달뜬 그의 연인이 달콤하고 뜨거운 입김으로 사랑의 말을 내 속으로 불어넣을 때면 내 몸의 솜털이 온통 녹아버릴 것 같았거든. 그 연인이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잔소리를 내 몸 안으로 집어넣고 있지만.

그래, 대체로 나는 그에게 만족하는 편이야. 그는 높은 소리보다 낮은 소리를 좋아하니까.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내는 소리를 좋아하니까. 내가 애정하는 소리들을 그도 좋아하니까. 음악에 대한 취향도 비슷한 편이고 말이야.

불만? 왜 없겠어.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완고해지는 거야. 내가 아는 한 젊었을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는 셀로판 귀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남의 말을 잘 들었지. 지금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 조금만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듣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라니까. 다 자신을 위하고 염려해서 하는 가족과 동료의 충언인데 말이야. 누가 들어도 인사말이 분명한 그런 칭찬만 찾아 들으려 하고.

사람들은 바깥귀만 보고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바깥귀 말고도 고막, 고실, 이소골, 이관 등으로 이루어진 가운데귀와 중력과 가속, 운동과 회전감각 등 몸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속귀가 있는, 그러니까 제법 섬세하고 복잡한 기관이야. 청각뿐 아니라 평형감각도 담당하고 있어요, 내가.

그런데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해요. 멀쩡한 나를. 벌써 귀가 먹었다고. 먹은 건 내가 아니라 그의 좁고 딱딱해진 마음인데 말이지. 내 말은 그가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야.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식이 하는 말을. 동료가 말을 듣지 않으면 동료가 하는 말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몸이 하는 말을. 아주 넘어지지 않으려면 말이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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