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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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새 새봄의 문턱이다. 백설이 분분한 속에도 어딘지 춘기는숨길 수 없다. 동토속이지만 「라일락」뿌리는 물기를 머금기 시작했으리라. 목봉가지끝의 망울도 한결 윤이 난다.
인정·세정이 메말라도 계절의변화는 한결같이 우리에게 新鮮하고「리드미컬」한 感興을준다. 추위와 어두움과 위축속에서도 봄의 숨결은 절망과도 같은 암벽을 뚫고솟아나와 생명의 기쁨을보여준다.
지난겨울은 모진 날씨가 따로없었다. 민숭민숭 그만 겨울은 슬그머니 뒷걸음을 치려한다.
북국의 도시「모스크바」는 예년에 없이40도(섭씨)를 넘는날씨도 있었다고 한다.「유럽」도,미국도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것 같다. 하긴 우리나라도 며칠씩이나 눈발에 갇혀 산하가 조용했었다.
도시에서의 눈은 이젠 구박덩어리가 되었지만,그래도 눈없는맹숭한 날보다는 낫다. 백설위에딩구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상쾌하고 즐겁게만 보인다.
「당상학발간년수,슬하자손만세영」(당강학발천년수,슬하자손만세영).
우리의 옛사람들은 입춘이면 이런 멋들어진 문구를 대문의 양쪽에 써 붙이기도했다. 춘방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국태민안 가급인족」등 간절한 소망의 축련도 있다.
요즘은 철제의 요란한 대문들로하여 어디 춘방을 붙일 자리도 없지만 그런 멋을 아는 집안은 더욱 드물다. 오히려 번거롭고 걸맞지도 않는 격식으로만생각될 뿐이다.
천문학상으로는 봄은 아직 멀었다. 서양사람들은 자(척)로 재듯 봄은 3월 제4주에 시작되어6월 제3주에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위도를 가지고 셈한 산술적인 봄이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신년 원일에 접어들면 신춘이라고 말한다. 봄을 기다리고 기리는 심정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웅크리고 사는 삶의 자세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기대감의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4계권에 사는 동양인모두의 습관인 것도 같다. 입춘의고속엔 이날이면 관리들이 청의를입고동방에예를 올리는 의식도 있었다. 동방에서 온다는 봄의 서기와 생동감을 도영하는 항사였다.
마음도, 몸도 새롭고 발랄하게.새봄의 소박한 결의랄까. 세상은여전히 어지럽고,세월도 여전히 덤벙거리거늘 봄을 맞아 우리라도 마음을 새롭게 가져야 하겠다.
입춘대길·건양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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