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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잃고 55억 끊길 판 … 전교조 25년 만에 최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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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긴급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각 시·도교육청에 공 문을 보내 전교조 전임자 72명에 대해 휴직 허가를 취소하고 7월 3일까지 복직하도록 조치했다. [뉴스1]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 인정 여부를 두고 4년여간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전교조가 19일 결국 노조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한 전교조는 향후 활동에 크고 작은 제약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 밖으로 밀려난 전교조가 강경한 대정부 활동을 벌일 경우 학교 현장도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와 전교조의 갈등은 “해직 교사 9명의 조합원 지위를 박탈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에서 불거졌다. 전교조는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교원노조법(2조)이 헌법에서 보장한 단결권 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왔다.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교원은 학생이 건전한 인격체로 발전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이라며 “ 입법자(국회)는 교원의 노조 설립·가입 등에 대해 일반 근로자보다 더욱 특별한 규율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전교조가 설립 신고 때 해직교원도 노조에 가입하게 한 규정을 뺀 허위규약을 제출했다”며 "노조법 상 해직자 가입을 허용하면 곧바로 노조로 보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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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판결로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15년간 받아온 권리와 혜택을 잃게 된다. 더 이상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육청의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전교조 대표도 자격을 잃는다. 재정 타격도 적지 않다. 교육청으로부터 제공받던 사무실(임차보조금 52억원)과 행사비 등 지원금(연 3억~5억원)도 끊길 수 있다. 조합비의 급여 원천징수는 7월부터 중단된다. 전교조 관계자는 "이에 대비해 조합비 징수를 계좌이체로 전환하는 캠페인을 진행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전임자의 학교 복귀 문제다. 전교조 전임자 72명은 노조의 조합 사무, 정책 개발, 대정부 활동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김정훈 위원장도 본지 인터뷰에서 “전임자가 없으면 전교조 조직은 와해된다”고 했다. 전교조는 일단 복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교육부의 징계로 다수의 해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전교조는 21일 대의원 총회에서 전임자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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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쪽으로 규약을 고친 뒤 노조설립 신청을 다시 하면 노조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은 “이미 지난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시정명령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교조가 노조 지위를 잃었지만 교원 임의단체로서의 활동이 제한받는 건 아니다. 위기를 맞아 내부 결속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진보교육감들과 함께 한층 강경한 대정부 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전교조의 집단행동→교육부 징계→전교조·진보교육감의 반발’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정치권·시민단체의 반응은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법을 외면하고 투쟁하는 교사를 보며 학생이 무엇을 배울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합법노조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전교조의 대장정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교총은 성명에서 “전교조의 조직·운영에 관한 문제로 교육 현장에 갈등과 혼란이 초래돼선 안 된다”고 했다.

천인성·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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