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 단정싸고 두 갈래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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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매치기 용의자가 장물을 가졌고 경찰의 검색을 피해 달아났다고 해서 그러한 간접증거와 정황만으로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별도의 범행도구가 없고 범행순간을 목격하기 어려운 소매치기범죄의 경우 『간접증거 및 정황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판례(69년3월4일)에 따라 법원은 지금까지 유죄판결을 내려왔으나 이 판결이 나옴으로써 앞으로 소매치기 사건수사에 새로운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
서울형사지법항소부는 20일 간접증거·정황만으로 소매치기로 몰려 기소된 이종석 피고인(26· 경기도인천시남구옥련동573)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해 4월17일 인천에서 서울에 왔다가 하오6시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영등포에서 전철로 갈아타기 위해 종로2가에서 시내「버스」(서울5사3927호)를 탔다.
이 「버스」를 탔던 승객 조모양(19·서울강서구신정동)이 현금 4천원을 소매치기 당했다.
조양은 안내양에게 이를 알려 차를 세우게 했다.
「버스」를 가까운 파출소 앞에 대고 경찰이 모든 승객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을 때 이씨는 「버스」에서 몰래 빠져나와 달아났다.
이씨는 「버스」가 서 있는 곳에서 15m쯤 떨어진 서울포마구마포동 최모씨 집 변소로 달려가 본뇨통에 「현금 4천원」(1천원권 4장)을 버리고 막 돌아서는 순간 뒤쫓아온 경찰에게 붙들렸다.
이씨는 그 해 5월4일 서울지검에 의해 절도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씨는 법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품이 나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을 알고 범인으로 몰릴 것 같아 순간적으로 달아났던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서울형사지법은 7월26일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이씨가 물건을 훔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이씨에게 절도죄를 적용,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이씨는 ▲「당황」해서 달아난 것이며 ▲자신이 물건을 훔쳤다면 2∼3개의 정류장을 지나도록 달아나지 않고 왜 그대로 있었겠으며 ▲범행 당시 목격자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항소했다.
이 같은 이씨의 이유가 받아들여져 서울형사지법항소부는 1심 판결을 깨고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판결에 대해 소매치기란 「재빠른 손놀림」이 범행수법이므로 이를 목격하기 어렵다며 『직접적인 증거 없이 간접증거 및 정황만으로 유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시민보호에 많은 문제점이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소매치기의 경우 간접증거와 정황으로도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대법원판례를 들어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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