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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중앙문예」단편소설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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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헛간>지붕 위에는 밤새 명을 다한 박꽃이 입을 오므렸다. 사립가에 선 감나무에서 제법 솔방울 만한 풋감이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져 구른다. 계동이 녀석이 얼른 주워다가 물 담긴 항아리에 넣었다.
꼭지가 실하지 못하거나 벌레가 다쳐 놓은 풋감은 하루 여남으개씩 떨어졌는데 이것을 한 사나흘 물에 담가두면 떫은맛은 사고 달콤한 맛만 남는 것이었다. 산골 아이들에게는 그 삭힌감이 유일한 군것질이기도 했다.
『아부지요. 퍼떡 가입시더.』
감을 넣고 온 계동이놈이 또 성화를 대었다.
첫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집안 사람들을 들쑤셔 깨우더니 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아버지를 다그치는 것이었다『이눔아, 아침 묵은 뱁이나 내려가거든 가자.』
여느때 같으면 버럭 소리를 질렀을 일이나, 아버지의 목소리는 밤이슬에 젖은 무명옷처럼 눅진하였다.
아버지는 마당을 내려다보면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었다. 명절 만난 아이처럼 싱글벙글 하면서 마당을 맴도는 계동이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눈은 담배연기만큼 흐려져 갔다.
『저것이 얼마나 속에 소원이 됐으면 저래 좋아 하겠능기요?』
밥상을 들어내던 아내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캐 말이다. 자석, 허헛, 시고퍼 우습다.』
아버지는 서글픈 웃음을 짓고 말았다.
『서둘러 갔다오이소. 지형이 오늘 공일인데 올낍니더. 지난 공일에도 안오고 이상합니더.요새는 내가 꿈자리도 시꺼럽고…….』
『요새도 지거반 아이들이 놀리쌌능강?』
『눌리는 것도 그렇지만, 어린 속에 얼매나 고민이 되겠능기요.』
『아무일 없다. 이 마실에서 중학하는 놈 몇 되노. 그만해도 지는 유지다. 기죽을 택 없능기라. 개똥아, 가자.』
아버지는 열번도 더 기운 일복을 벗고 무명 바지저고리로 갈아입었다. 옥양목 두루마기에 맥고모자까지 갖추어 봐도 퍽 어울리는 풍모는 못되었다. 머리는 나이를 훨씬 앞질러 반백에 가깝고, 말라서 새까만 얼굴에는 찌들어 겉늙은 표가 완연하였다.
아버지가 흰 고무신을 찾아 신자. 계동이는 이미 골목을 내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모양으로 봐서는 성한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골목에서 그 또래의 아이 두엇이 나오더니 계동이를 흉내내어서 까치발을 하고 우쭐우쭐 걸으면서,
『깐치야, 어디 가노?』한다.
『좋은 데 간다.』

<계동이는>전처럼 고개를 푹 숙이지도 않고 활기있게 말했다.
『짠치야, 깐치야 니 새끼 물에 빠진 것 건져주꾸마, 내 눈에 든 까씨 빠드고, 엇씨이-.』
아이들은 제 눈을 비비면서 까르르 웃었다.
『이놈우 새끼들 지랄 안 하나.』
그러면서 계동이는 뛰따라 오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지거 아부지 온다, 하더니 목을 움츠리고 딴 골목으로 내빼버렸다.
범 물어갈 놈들! 비감하게 생각하면 창자가 뒤집힐 일이지만, 다 철없는 아이들이라서, 아버지는 넓게 마음먹고 말았다. 부자는 골목을 빠져나와 한길로 접어들었다. 하루 두어 차례 버스가 다니고 나뭇짐 실은 화물차가 가끔 다닐 뿐인 도로였다. 길에는 자갈이 가득 깔려있고 차바퀴 지난 곳은 돌없이 패어져 있었다. 부자는 바퀴자국을 하나씩 잡고 걸어갔다.
『살살 걸어라.』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아서 까치처럼 발가락만으로 걸어가는 꼴이 안쓰러워서 아버지는 염려를 해주었다.
『게안심더.』
나도 성한 사람과 똑같이 걸을 수 있단 말입니더, 하는 듯이 아들은 더 우쭐우쭐 속력을 내었다.
에이고,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내 밑에 저런 발목 비틀어진 것이 태어났단 말꾜. 한문깨나 아는 노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사람의 이름자에 생사화복이 많이 달렸다는데…….
귀한 자식일수록 아물따나 지와야 되능기라.
어른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그것도 그럴 성하다 싶어서. 아물따나 개똥같이 크거라고. 개똥아. 하고 부르기로 했었다. 한날은 이장이 찾아와서 개똥이 출생신고 했나 하기로. 안했다 하니. 세살 먹이도록 안하는 법이 있나, 당장 가라고 해서 면사무소를 갔다.
면서기는 이것저것 묻고 적고 하더니
이름이 우예 되는기요? 해서,
버들유, 유 개똥. 해버렸다.
서기는 한참이나 쿡쿡 웃다가.
촌에는 이런 사람 많심더. 호적에는 한자로 적어 올려야 되는기라요. 그러니, 내가 지어디리겠심더. 하는 것이었다.
아하, 이거 내가 정신이 깜빡 했심더. 이거 참 미안시럽심더. 하고 뒤통수를 긁적이는데, 서기는 종이에다가 <유계동>이라 적어 넣고 있었다.
버드나무가 동쪽이 열리니, 에, 버드나무가 아침해를 받았다, 이름 좋지요?
예, 그거 조옷심더.

<그때>이름을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닌데. 배운 사람이 지은 것이라 내가 짓느니 보다야 열배로 낫지 마는, 옥편하나 찾아 보는 법 없고 글자 획수도 세 보지도 않고 그렇게 데꺽 짓는 수가 있나? 뜻이야 좋다마는. 빌어묵을! 동쪽은 열리고 발목은 오그라들고, 이름하고는 하나도 안 맞아 들어간다.
안 맞아 들어가는 것이. 유방만이란 내 이름을 놓고 봐도 그렇다. 농사일 하는 놈은 그저 참나무 몽둥이 같이 야물어야 상농꾼이라 해서, 방망아! 하고 부르다가, 어느 면서기가
버들 유, 향기로울 방, 찰 만, 버드나무 향기가 가득하다, 근사하지요?
예, 근사합더.
이렇게 된 것이 틀림없으리라.
병신아들 때문에 속을 썩혀서 부모 얼굴이 거미같이 된 마당에, 향기가 가득하기는 커녕 수심만 가득하다. 난장맞을! 내 이름이 지랄 같아서 저런 자식이 나온 거 앙이겠나?
아버지는 이런 생각도 해 보면서 아들 뒤를 따라 갔다.
한길을 버리고 이제 왼쪽으로 난 산 기슭길로 접어들었다. 과히 높지 않은 산들이 모란꽃 잎사귀 모양 첩첩으로 둘러싸 있었다.
길은 산자락을 따라 좁은 등판 곁으로 나 있었다. 초가집 마을이 군데군데 있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네들과 소 몰고 가는 상꼴들도 더러 보였다. 종이를 길쭉하게 잘라서 만든 깃발이 들판에 수없이 꽂혀 있고 허수아비도 맥없이 서 있다. 새 쫓는 아이들이 부지런히 내 질리는데도 논 기슭 여기 저기에 새 빨아먹은 이삭이 허옇게 보였다.
『한시간 택 걸었지요? 아직 많이 남았능기요?』
아들이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선선한 들바람이 숙인 벼이삭을 쓸면서 불어오는데 아들의 콧등에는 땀밤울이 송글거리고 머리 밑에서 흘러내린 땀은 관자놀이와 귓바퀴 뒤로번져내리고 있었다.
『얼추 반 택 왔다. 니 되제? 쉈다가까?』
아무리 마음 다부지게 먹고 악을 내어 걷는다 해도 발꿈치가 들린 발로야 얼마나 고달프리 싶어 아버지가 먼저 길옆의 풀밭을 찾아 앉았다.
『된 거는 없심더. 덥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떨어지듯 풀썩 앉는 것으로 보아 발가락이 몹시 아픈 모양이다. 성한 사람한테 안 지겠다고 저리 기를 쓰는 것을…. 아버지는 저절로 한숨이 후우 나왔다.
아들은 다리를 펴고 앉아 발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발은 게의 앞발 모양 안으로 휘어졌고 종아리뼈와 거의 수평으로 밋밋하게 튄 채 굳어 버렸다. 아래의 좌우로 자유로이 요동 안 되는 발목을 그래도 아이는 움직여 보고 있었다. 요놈의 발목이 쇠라면 녹여 두들겨서 바르 수도 있을텐데, 그런 생각이나 하는 듯 아이는 부릅뜬 눈으로 제 다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는 신을 벗었다. 신바닥에 땀과 흙먼지가 범벅이 돼 있었다. 늘 발가락만으로 걷기 때문에 거기만 발달을 해서 발가락은 모두 어른 엄지발가락 만큼씩 컸다. 그 엄청난 발가락들이 또 오리발 모양으로 옆으로 벌어졌다. 잎 벌어진 배추같이 생긴 발이라 맞는 신이 잘 없었다. 어른 고무신 중에서도 그중 큰 것을 사야 발가락이 들어갔다.
그러나 뒤축은 반이나 남아서 질질 끌렸다 아들은 새끼줄로 신과 발을 한데 묶었기 때문에 걸을 때는 신 뒤축이 종아리 쪽에서 흔들흔들 하였다.
『퍼떡 가입시더.』
발과 신바닥의 땀이 마르자 아들이 먼저 일어섰다. 소달구지 길을 따라 산비탈 한 굽이를 돌면 저 만큼 또 한 굽이가 나오고 산 속으로 구불구불 들어가는 길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을 만나서 숯골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면 아직 한참 가야된다 해서 한참 가다가 물어보면 또 한참길이라 했다.
아들의 걸음이 훨씬 처지고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꽉 다문 얼굴에는 아침에 같은 웃음이 없었다.
『쉈다 갈래?』
『앙입니더. 속히 가야지요.』
『내 등에 업히래?』
『걸어갈 수 있심더.』
아들은 터들터들 하다가는 껌쩍 생각난 듯 까치걸음에 힘을 주곤 하였다.
길가에 앉았던 먹개구리가 그 큰 뜀뛰기로 길을 가로질러 논바닥에 곤두박질을 한다. 참새 떼들이 휙휙 하늘을 날다가 어느 논 위에 떨어져 내린다. 곁의 산 어디쯤서 낮 부엉이가 신음소리처럼 울고 있었다.
부자는 조금 더 걷다가 길가의 주막에 걸음을 멈췄다. 집 뒤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사립문 문설주에 담배표 간판이 붙어있고 마루에 빵이나 과자도 놓고 팔고 있다.

<부자는>마당으로 들어섰다.
『손님 저리로 가 앉으시소.』
허리가 조금 굽은 반백 노파가 마주 나오면서 담장 밑을 가리켰다. 크고 작은 독들이 소담스럽게 놓여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는데 우물가에 접시꽃이 피어 있었다.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서서 그늘이 좋고 그늘 아래 살평상이 놓여 있다. 대나무를 반쪽씩 쪼개서 만든 살평상이었다.
『빵 하나 하고 탁주 한사발 주이소. 그라고요, 담배 한 보루 종이에 잘 싸주이소. 어디 가져갈 겁니더.』
『예에, 올라 앉으시소.
노파는 한참 꾸물거리다가 주문한 것을 모두 소반에 얹어왔다. 샘물 한 그릇도 곁들였다.
『쯔쯔쯔, 활달키 잘난 아이로, 야야 물 마셔라. 에고, 저 땀 봐라, 쯔쯧』
노파는 평상 귀퉁이에 앉으면서 아이를 보고 혀를 찼다. 깡마르고 까만 손으로 아이의 발을 만져보고 하더니
『에이그 부모 마음이 어떻겠노. 우째 저리 됐능기요?』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병은 자랑하라 캤지만은 남사시럽심더. 아매 태중 병인 가베요.』
아버지는 자식 걱정해 주는 인정이 고마와서 그렇게 대답했다.
『날 때부터 저랬능기요?』
『네댓살 묵도록은 몰렀심더. 아아가 밥 묵을 때나 앉아 놀 때나 늘상 꿇어 앉능기라요. 어릴 때는 이상 없었는데, 밖에 잘 놀러가지도 않고 얌전시럽섰심더. 꿇어앉으니 앉음새도 얌전코, 태중병으로 그래한다 컸능거로 몰랐지요. 주야로 농사일에 바쁜 사람이. 요놈은 소학교 삼학년이고. 내 큰 놈은 중학 댕깁니더. 그러니…』
『아이고 자식을 중학꺼정 보내능가배요?』
『예에, 그놈 학비 바라지 항라카이 주야로 놀 손 없고. 하니. 자연 자식 돌볼 여가가 있십니꺼. 태중병이라캐도 초기에 잡다리 하면 혹 곤치는수가 있다 캅디더 만은 시기가 늦었심더. 귀한 자식일수록 아물따나 키와야 된다캐서 지 앉는대로 놔두었더니 이제 뼈가 굳어뿟심더.』
『아하, 쯔쯔쯔, 끓어 앉기 버릇하는 것이, 그게 버릇이 아니라 배냇병이구만은요? 발을 안으로 모아서 꿇어앉으면 궁둥이가 뒤꿈치를 눌러가지고, 커 갈수록 뼈가 굳어 가지고 발목이 굽고, 하아, 그것 참 희한한 병일세요?』
『예에, 배냇병이라 카능기 무섭심더.

<중학에>댕기는 내 큰 놈도, 이 놈은 엄지손가락에 선인장 새싹 모양으로 손가락이 하나 더 돋아 나왔심더. 이게 다 태중병이고. 컷참, 내 팔자에 자궁에 액고가 많으라 캤으니 도리없는 일이지요.』
『자궁에 액은 미리 미리 풀어야 되는데, 쯔쯔쯔.』
『약도 숱하게 하고 프닥거리도 한두번 한기 앙입니더. 원한 있는 조상 중에 누구가 아이한테 붙어서 발목을 비틀었다 캐서 그 원구도 빌어서 보내기도 하고 쫓기도 했심더. 하아이고, 그때, 귀신 좇을 적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가지고 아아로 얼매나 패고 주먹으로 쥐지러고 발목을 비틀고, 아아로 그때 초죽음 시켰심더. 그때 혼접을 묵었는지, 지금도 잘때 껌쩍껌쩍 놀라고 꼬라지가 조렇게 마르네요. 부모된 마음에는 그때 그 꼬라지는 두번 다시 몬볼 겁디더. 원귀 앙이라 원귀 할배를 푼다 캐도. 엥이고.』
아버지가 한없이 이야기를 늘어 놓자,
『아부지요. 퍼떡 가입시더.』
아들이 평상에서 일어서서 새끼줄 묶은 고두신에 발가락을 밀어 넣었다.
『이눔아, 침이 그렇기 맞고 싶나? 그래, 가자. 부모마음 캐도 니가 젤 답답할 끼다. 숯꼴에 침 잘 놓는 노인이 있다 소문 듣고 찾아가는 길임니더.』
『예에, 그럼 다 왔심더. 저 앞산 밑에 마을 하나 보이고 키 큰 가죽나무가 보이지요? 나무 위에 까치집이 보이지요? 바로 그 집만 찾아가소. 』
『아하, 그렇십니꺼? 노친네 올때 또 보입시더.』
부자는 까치집 있는 가죽나무를 바라보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희부연 안개에 싸여있는 산밑 마을이 삼사마장은 돼 보였다. 동구 밖에 이르러서는 소달구지 길을 버리고 논둑 길로 접어들었다. 실개울이 길 따라 흘러가고 논둑에는 연분홍의 들 나팔꽃이 피고 있었다. 잠자리들이 들 위로 날아다니고 비짜루 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죽나뭇집 사립문을 들어서니 풍골 좋고 수염이 허연 노인이 방으로 맞아들였다. 대강 수인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아이의 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다 듣고 난 노인은 참 기가 막힌다는 듯 한참 쳐다보다가,
『이거는 배냇병이 아닐세. 부모가 자식한테 큰 원망 듣기 생겼네. 끓어 앉는 버릇을 고쳐주어야지….』하고 입을 떼었다. 부자는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른 채 뚱해 있는데,
『발목이 굽은 채로 뼈가 굳었다 하는 날이면 편잭이 와도 소용없는 일이고, 다행히 헐이 허한데다가 풍한습열이 관절지절에 침범하야 혈행을 방해하여서 어혈이 생기게 한 결과로 신축부전하고 마비된 증세라 한다면은, 가망이 바이없는 것은 아니네마는, 암만 캐도 나는 자신 몬하겠네.』하고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의 귀에는 다른 말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가망이 바이없는 것은 아니네, 하는 말만 분명히 들렸다.
『소문에 듣기로는 침술로는 어르신네를 당할 명의가 없다고 합디다. 능히 고쳐 주실끼라고 믿십니다.』
『뭐 명의랄 꺼는 없고.』
본시 명의들이란 첨 몇 번은 사양하고 빼보는 것이려니, 아버지는 그렇게 짐작하고,
『이까지 왔는데 헛걸음하기도 뭣하고요. 되나 안되나 원은 없도록 침을 놔 주시소. 개똥아 니는 샘에 가서 발씻고 온너라. 침 맞자. 저놈은 여기 온다고 좋다고 밤잠도 안 잤심더. 발 곤친다 컸는 일념으로……』
『어혈을 한번 다스려 보기는 보자마는, 아이가 견디겠나? 가덩찮이 굵고 아픈 침인데.』

<노인이>침대롱을 꺼내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게안심더,』
발씻고 들어오는 아이가 문지방을 짚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아픈 변을 하도 여러번 당해 봐서, 저놈은 안 죽을만 하면 참심더.』
『저의 큰자식 놈은 중학 댕깁니더. 그놈은 육손인데, 이것도 침 가주고 곤쳐질랑강요?』 안될 줄 뻔히 알면서도, 나도 아들 중학 보낼 만큼 살림이 있고 머리가 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 말을 덧붙였다.
노인은 들은 척도 안하고,
『시작해 보자.』하고 아이를 건너다보았다.
계동이는 주저도 없이 노인 앞에 두발을 내놓고 누웠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품이 마음속 깊이깊이 낫기를 기도하는 것 같았다. 노인은 침대롱에서 수십개의 굵고 가는 침들을 꺼내 놓더니 우선 수바늘 만한 것부터 놓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침이 꽂힐 때 조금 움찔움찔 했으나 크게 아픈 기색은 없었다. 작은 침은 발등 쪽에 다섯개씩 꽂혔다.
노인은 다시 구두 깁는 바늘만큼 큰 침을 집어들었다. 아버지는 가슴이 다 서늘하였다.
『이제부터가 문젤세. 다리를 단단히 잡아야 하네. 깊이 들어가는 침이여.』
노인은 발목 근처에 침을 가져가서 조금씩 떨리는 손을 멈추더니 예리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경락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침 끝이 자기의 명치끝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졸아들었다. 마침내 내려치 듯 노인의 손이 발목에 떨어졌다. 아이는 윗몸을 덜썩하더니 눈을 번쩍 뜨고 입을 딱 벌렸다. 아버지는 엉겁결에 아들의 다리를 꽉 눌렀다.
노인은 침 머리를 잡고 손가락을 비볐다. 나사같이 생긴 침이 돌면서 살 속으로 파고 들었다. 아이는 으으읍 하고 잇사이로 비명을 깨물었다. 노인은 또 침 머리를 손톱으로 탁탁 퉁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비명을 지르고 몸을 비틀었다.
아버지는 아이의 발을 더 단단히 누르는 것이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기나 한 것처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노인은 고통을 일부러 주려는 사람인 양 비벼 넣고 퉁기기를 계속했다.
요놈우 영감아 대강 퉁겨라, 그 고함소리가 아버지의 입 속에서 소용돌이를 쳤다.
침 하나를 다 놓자 아이의 얼굴은 열이 올라 빨갛게 되었고 땀방울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두개 더 놓아야 되네. 잘 잡게.』
『한 개만 더 놓으면 안 되겠십니꺼?』
『아부지요. 게안심더.』
발목 힘줄 사이에 침이 하나 더 들어가고 세째 것은 엄지발가락 사이를 찔렀다. 아이는 눈을 흠뜨고 온 몸을 뒤틀고 몸부림을 쳤다. 땀은 약수건으로 한약을 짜는 것처럼 흘렀다.폐부를 다 긁어 올리는 것 같은 비명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개똥아! 쪼매만 참아라. 곧 다된다. 하나도 안 아프제? 개똥아!·아이고, 다 키웠다. 쪼매마 참아라. 우리 개똥이 어른 다 됐다.』
아이의 다리를 부둥켜안은 아버지는 얼이 다 떠서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이는 숨이 막히도록 아버지의 허리를 껴안고 어금니를 부드득 갈면서 고통을 이기고 있었다.
『되게 아플 때는 낮 하늘이 까맣게 보이네. 한쪽 발은 다 끝났고. 좀 쉬었다가 마저 하세.』
노인도 숨을 푸욱 내쉬고 손을 놓았다. 어르신네요, 마 고만 하입시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혹시 한쪽 발만 낫는다고 한다면은 안되겠다 싶어서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아들은 눈 뜰 힘도 머리를 가눌 힘도 없는듯이 목을 외로 꼬고 늘어져 있었다.
옷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아들 얼굴의 땀을 훔쳐내었다. 어떻게 하면 아픈 것을 감해 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어 답답하였다. 저 무서운 아픔을 겪고 있는 자식을 속수무책 보고만 있어야 되는 아버지는 더할 수없이 마음이 아팠다. 땀 닦아주는 일뿐이구나. 생살을 저렇게 꿰뚫고, 에고, 모진놈아, 내마음 아플까 싶어서 고함도 맘대로 안 지르고 제발하고 낫기만 낫거라. 아픈거는 잠깐이다. 죽지나 말아라.
『개똥아, 요번에는 덜 아프단다. 잠깐이다.』
아버지는 바싹 마른 목으로 헛김을 새면서 말했다.

<침 박힌>아이의 발은 가끔씩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방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러갔다.아이의 급한 숨소리가 좀 가라앉고 솟던 땀이 숙질만하니,
『대단한 녀석일세. 또 시작해 보자, 잘 잡게.』하면서 노인은 굵은 침을 잡아들었다. 허파라도 내려앉는 듯한 한숨을 내 쏟으면서 아버지가 발목을 잡자 탈진해 있던 아들이 흠칫 놀라면서 눈을 떴다.
『꼭 낫겠지요?』
아들은 입술을 지그시 물더니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개똥아, 아프거든 고함을 질러라. 참을거 없다.』
『발 너무 세게 누르지 마이소. 더 아풉디더.』
『오냐. 알았라. 나도 모르게 그래된다. 내가 대신 아펐으면 안 좋겠나. 휴-.』
그로부터 한 삼십분 동안, 방안에는 아부지를 부르는 비명소리가 연방 터져 나왔고 헛소리처럼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꽉 잡게, 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사립문간에는 사람의 생 배나 째는 줄 알고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여자들은 그 끔찍한 소리에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자리를 피했다. 논바닥에서 피를 뽑던 농부들도 일손을 멈추고 한참이나 집쪽을 향하고 서 있었다 비명이 터질 때마다 까치가 제집에서 푸드득 날아오르곤 했 다.
『다 끝났네.』
노인의 그 말이 떨어지자 아버지의 허리를 끌어안았던 아이의 팔이 축 늘어져서 떨어졌다. 아버지의 이마에서 떨어진 땀이 방바닥과 아들의 다리에 얼룩졌다. 아이의 입술은 파랗게 탔고 얼굴은 부어오른 것 같았으나 눈두덩은 푹 꺼져 있었다. 어린것이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아버지는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아들의 두 발에는 고슴도치처럼 침이 수북이 박혀서 푸륵푸륵 떨고 있었다. 부모되고는 이꼴 더 몬볼 노릇이여, 낫는다 캐도 두번 다시 침은 안 맞힐끼다. 전에 원귀 쫓을 적에 반죽음 시켜 놓고 이제 마저 죽이는 갑다. 에고, 죄가 많아 남의 부모 노릇하지. 저리 죽을 변 당하는 것을 아침에는 그리 좋아했지, 발 고칠끼라고,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니놈은 죽어도 까치가 돼서 환생할 끼다.
아버지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사립 곁의 가죽나무를 쳐다보았다. 까치 둥우리가 높다랗게 얹혀 있었다. 둥우리를 이룬 잔 나뭇가지들이 모두 굵은 침으로 보였다. 까치가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와 내려앉고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한참 바람을 마시고 돌아온 노인은 이제 침을 뽑기 시작했다. 비비고 퉁기면서 뽑아나갔다. 아이는 허옇게 뒤집힌 눈을 번쩍번쩍 뜨기는 했으나 고합을 지를 기운도 없는지 그저 입만 쩍쩍 벌렸다. 굵은 침을 뽑을 때는 피가 따라 나왔다. 검게 탄 것이 줄기를 이루면서 발가락 사이와 복사뼈 골을 흘러내렸다. 저것이 어혈인갑다, 쏵쏵 빠지거라, 저놈만 나오면 나을 수도 있을 끼다, 이렇게 속을 다지면서도 아버지는 전신을 덜덜 떨고 있었다.
끼 때가 훨씬 지난 시간에 점심상이 들어왔다. 밥이 세 그릇 놓였다. 기운을 차리려면 먹어야 된다고 노인이 권했지만 꿀물을 준다 해도 입에 널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는 찬물만 한 그릇 단숨에 마셨다.
『아부지, 나도 물.』
까무라쳐 있던 아들이 눈을 감은채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아이의 뒤쪽을 받쳐 일으키고 입에 물그릇을 대주었다. 아이도 한 그릇 물을 쉬엄쉬엄 다 마시고 다시 누웠다.
『하룻밤 자야 아이가 기운을 차릴게야. 자고 내일 가도록 하게. 빈속에 먼길 걸을 수 있나.』
노인 혼자 늦은 점심을 들면서 말했다.
『어르신네 말씀은 고맙십니더 마는, 저가 업고 가지요. 집에서 마중도 나올 낍니더.』
아버지는 염라대왕 같이 보이는 노인곁을 어서 떠나고 싶었다. 해가 얼추 서산 마루에 기웃할 때 아들은 일어났다.
『아부지요. 퍼떡 가입시더.』하고 문지방으로 무릎걸음을 했다.
『이눔아, 기운 좀 더 차리고 가자』아버지의 목소리는 밤이슬 젖은 무명옷처럼 축축하였다.

<부자가>노인집을 나왔을 때는 좁은들 위에 산 그림자가 반 넘어 밀려왔을 때였다.
『내 등에 업히라.』
아버지는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 올려서 허리띠에 찌르고 주저앉았다.
『걸어 볼람니더.』
『업히라.』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실 개울가의 논길을 걸어갔다.
『되게 아프더나?』
『예.』
『인제 다시는 오지 말자.』
『···. 』
대나뭇 집 주막까지 왔을 때는 이미 해는 뉘엿이 넘어가고 있었다. 환갑 지난 지가 얼마 안돼 보이는데 허리가 굽은 그 노파가 뛰어나왔다. 몹시 안된 얼굴을 하면서 계동이의 팔을 부축해 살평상에 눕혔다.
『어이고, 아까까지 펄펄하던 아아가, 부모 마음이 어떻겠노. 자식이란거는 나남없이 다 애물이라요, 쯔쯔쯔.』노파는 땀이 끈적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남들은 다 성한 자식 키우더마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밤중의 궂은 빗소리 같았다.
『그렇잖심더. 사지육신 멀쩡하면 뭐 하능기요. 마음 병신이 더 큰 우황이지요. 마음 바르고 몸 불구가 열번 낫심더.』
노파가 이런 말을 하자, 가만히 누웠던 아이가 눈을 번쩍 뜨고, 그 말은 참 듣기 좋다는 듯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도 위로하는 눈빛으로 아이를 마주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집에는 나 혼자 삽니더. 자식들은 있지만 뿔뿔이 다 나가고 찾아오는 길에는 걱정거리만 가지고 옵니더. 영감은 일찍 갔고. 내가 지거 애비 혼신이 와서 점한다고, 남사시럽다고, 다 집 나갔심더. 한 놈은 소학교 마치고 지 걸음대로 나가더니 도둑질꺼정 했능가 징역살고 있답니더. 내가 이거 자식 이야기 안 할 소리로 합니더. 말이 나오다보니, 자식이란 다 애물입니더』
해질녁이 되니 산바람은 더 서늘하게 불어왔다. 땀에 젖은 옷이 거의 말라갔다. 집 뒤 대밭에서는 댓닢 쓸리는 소리가 노파의 말소리처럼 쓸쓸하게 들려왔다. 숲 속의 제 둥우리를 찾는 산새울음이 점점 높아가고 부엉이 소리가 몹시 처량하였다.
『에이구, 내 정신 봐라. 뭐 묵은 것도 없을 끼라. 저 목에 뭐가 넘어갔겠노. 쪼매마 기다리시소.』하더니 노파는 탁주와 물 한 사발씩을 떠주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솔가지 끊는 소러가 뚝뚝 들리더니 곧 굴뚝에 흰 연기가 올라갔다. 연기는 대밭 속을 스며들었고 참새 몇 마리가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하늘을 향해 품어 올렸다. 누운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언저리가 푹 들어가 있었다. 인제 여기 다시 오지 말자, 합때 아무 대답도 없었던 아들의 마음을 짚어 보면서 아버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한 열흘 전이었으리라….
닭이 첫 홰도 치지 앉은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끙끙 앓는 소리에 어렴풋이 잠이 깨었었다. 일어난 김에 오줌이나 누고 자자 싶어서 눈을 감은채 요강을 더듬었다. 그러나 웃목에 늘 놓여있을 자리에 그게 만져지지를 않았다. 이게 어디 갔나 싶어서 눈을 떠보았다. 하얀 사기 요강은 저 만큼에 가서 히끗이 보였다. 앓는 소리가 그 근처에서 나오고 있었다. 낮에 일이 고달플 때는 아내가 그렇게 앓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그는 무심히 들었다.
그는 요강 전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런데 당겨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끙끙 앓는 소리도 예사롭지 않아서 그는 잠이 활짝 깨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성냥을 더듬어 찾아 긋고 호롱불에 불을 붙었다. 방안이 밝아졌다.
『저, 저런?』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동이가 엎어진 채 요강을 두 팔로 동여 안고 앓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어금니도 질끈 깨물었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무엇을 호소하는 듯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있다.
『개똥아! 니 와 .이라노?』
그 소리에 놀라 식구들이 모두 일어났다. 아이는 비밀스러운 것을 들킨 듯이 요강을 놓고 돌아눕더니. 이불 위에 얹었던 다리를 슬그머니 다시 덮는 것이었다.
『엉?』
식구들은 아이의 다리를 보고 속이 섬찟했다.
두발을 한데 붙여서 허리띠로 졸라매 놓고 있었다. 발 두개는 으스러질 듯 맞붙어 있는데 발목 깨는 공 하나 들어갈 만큼 벌어졌다. 허리띠는 발목에 매어졌고 그 큰 발가락들은 파랗게 색이 변했다.
『자식도! 이래 해 가지고라도 발목 바루어 볼라꼬!』
아내는 기어이 훌쩍거리고 말았다.
『자아석도!』
아버지는 달아오르는 가슴을 식힐 수 없어서 자꾸 담배만 빨았다. 불쌍한 것, 남들 잠든 사이에 일어나서 다리를 잡아 맺구마는. 한밤 내내 저러고 있었으니 얼마나 저리고 아팠을꾜. 하도 아파서 요강을 부둥켜안고 그래 용을 썼구마는. 에고. 이놈우 새끼야. 말라꼬 태어났노.
『낮에는 지 동무들한테 놀림 받아 속 아프고, 밤에는 잠도 몬 자고 저 고통당하고. 내 마음이 이런데 지 맘은 얼매나 씨라리겠노!』
아내의 그 말에는 식구들이 모두 흐느끼고 말았다.
『풀어라.』
그는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럿다.
아내가 매듭을 뜯고 당기고 해도 쉽게 풀리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가위를 찾아와서 단숨에 잘라 버렸다. 아이는 정말 편하다는 듯이 한숨을 휴 내쉬었다. 그러나 곧,
『풀면 안 되는데.』하고 섭섭한 눈으로 제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띠를 매었던 자국은 뱀감아 놓은 것처럼 멍이 들어 있었다.
『아무 염려말고 자거라. 내가 우째 알아서라도 용한 의원 찾아 가지고 니 발목 낫도록 하꾸마. 내가 꼭 고치꾸마. 아무 걱정말고 자거라.』새까맣게 그을은 호롱꼭지와 작은 불꽂 머리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어금니를 꾹꾹 씹었었다. 아버지는 천장을 향해 밤새 담배 연기를 뿜어 올렸었다. 계동이만 지쳐서 곤한 잠에 떨어졌고 식구들은 귓바퀴 속에 눈물을 담으면서 날을 밝혔었다.
『많이 시장하시지요. 콩죽을 쪼매 쑤어 왔심더. 맛이 있을랑강.』
노파는 콩죽 세 사발을 소반에 얹어왔다. 탁주와 물 한 그릇도 놓여 있고 물김치 한 주발도 얹혔다.
『아이고, 와 이라십니꺼? 고맙기사 한정없이 고맙심더마는, 참 인정새도 놀랍심더.』

<아버지가>황급히 일어나 상을 받았다.
『이런 아아로 우째 그냥 보내능기요. 어서 드소. 야야, 일 나거라. 에이고, 쯔쯔쯔.』
『노친네요. 이 은공은 꼭 갚겠심더』
『그런 소리 마소. 뭐가 은공잉기요. 옛 어른들 말씀에, 윗집 늙은이도 섬기면 복을 받는다 캤심더. 다 극락갈 길 낚는 일입니더. 야야, 어서 수저 들어라. 힘 차리는데는 콩죽만한 기 없니라.』
『할메요. 참말로 고맙십니더.』
계동이도 죽을 보더니 구미를 얻고 일어나 앉으면서 인사를 했다.
『오냐, 묵고 더 묵어라. 솥에 또 있다. 우짜든동 마음만 착실키 묵으면 모든 험이 뭄힌타.』
할머니도 같이 수저를 들었다. 부자는 점심을 굶은 후라 콩죽 맛이 더 한층 구수하였다.
상을 물리고 나니 산골짝의 들판 위에는 저녁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은 종일 산에 올려놓았던 소를 몰러 가고 있었다. 맘대로 산을 헤매면서 풀을 뜯던 소들은 어슬렁어슬렁 산을 내려오다가 우리 소야! 누렁아! 하고 외치는 주인집 아이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에 걸린 방울을 짤랑짤랑 흔든다. 배에 귀가 나도록 잔뜩 먹은 소는 잰걸음으로 다가와 이까리를 잡아달라는 듯 아이 앞에 머리를 숙여 보인다. 소등에 늠실 올라타는 아이도 있고 배를 툭툭 치면서 소와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는 아이도 보였다.
『노친요. 이만 갈랍니더.』
『한시간 택 있으면 달이 뜰낀데, 그 때 가시소.』
『늦다고 집에서 걱정할 낍니더.』
『정 그렁거든 보리짚단이나 몇개 가져 가시이소. 곧 깜깜해질 낀데. 짚단에 불붙이고 가시소.』하고 노파는 담 밑에 쌓아둔 짚더미로 가서 몇단 안아다 주었다.
『이 은공을 우째 갚을지 모르겠심더.』
『별소리 다 하십니더. 야야, 조심해가거라.』
『예, 할메요. 안녕히 계시이소. 고맙십니더.』
계동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주저앉았다.
『게 안심더. 한참 걸어보다가 되거든 업히끼요.』
아들은 조금 힘 차린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아버지는 위태위태한 생각이 들었지만 반죽음한 녀석이 제 발로 걸으니 대견스럽고 침 맞은 효험이 있나 보자 싶어서 잠자코 따라갔다.
주막을 떠나 산모퉁이를 한 굽이 돌 때 골짝은 어둠에 덮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허리띠를 잡고 천천히 걷는 아들의 걸음이 자주 기우뚱거렸다. 아버지는 옆구리에 한아름 끼고 가던 짚단을 내리고 하나에 불을 붙였다. 꼬리에 붙은 불이 활짝 피자 파닥파닥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속 빈 보리짚단이 폭죽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내 등에 업히라.』
아들은 말없이 아버지의 등에 넓죽 엎드렸다. 아버지는 남은 짚단을 등뒤로 넘겨서 아들의 가슴 앞에 쌓았다. 횃불을 아들 손에 쥐어주면서,
『내 머리 안 끄실구로 팔을 옆으로 쑥 내밀어라.』했다.
아들은 왼손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짚고 오른손에 횃불을 잡았다. 가슴에 쌓인 짚단 때문에 아들은 몸을 뒤로 젖혔고 아버지는 무거운 짐실은 지게를 진 것처럼 허리를 노파같이 굽혔다. 아버지의 건들건들하는 걸음에 따라 횃불이 춤을 추었다. 아들은 횃불을 곧추세웠다가 불기운이 약해지면 거꾸로 기울여서 불꽃을 살리고 하면서 아버지의 발 밑을 잘 비추었다.

<아들의>굽은 발목은 아버지의 배 앞에서 멈춰 있었다. 엄청나게 큰 고무신과 거기 묶여진 새끼줄을 아버지는 애써 보지 않으려고 멀찍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나 눈길은 자꾸만 아들의 발목에로 끌려갔다. 굵은 침을 맞고 피를 흘린 발목에는 동그란 검은 멍 네 개가 횃불에 비쳐 보였다.
『시방도 아프나?』
『간간이 뜨끔뜨끔 하기도 하고 주장 확신거립니더.』
『오늘밤 자고 나면 아픈거는 삭을끼다.』
『우리집에 감물에 담가둔 거 많이 삭았겠지요?』
꼭지가 허하고 벌레가 다쳐 놓은 풋감은 채 익지를 못하고 떨어지지만 그것도 며칠 물에 담가두면 떫은맛도 삭고 풋 냄새도 삭고 단맛이 나는데, 이눔아 니나 내 속은 언제 삭을지 한량이 없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덜 삭은 거 묵지 말고 진득이 기다렸다가 푸욱 삭거든 묵어라.』했다.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는 산비탈 어둠 속에 횃불 하나만 넘실넘실 걸어간다. 보릿짚 타면서 터지는 소리와 아버지의 고무신 소리만 들길을 올렸다. 길옆에 내려왔던 꿩이 놀라 푸드득 날아 가기도 한다. 횃블이 버드나무 옆으로 스치고 지나가자 거기 붙었던 매미가 찌르륵,놀란 소리로 울면서 도망간다. 횃불의 불꽃 머리에서는 검은 연기가 길게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고 바람에 흩날리면 아버지의 머리를 덮기도 한다. 아버지는 연기를 내쫓는 듯 머리를 휘젓는다. 모자 위에는 짚단재가 거뭇거뭇 앉아 있다.
『형아 오늘 왔겠지요?』
『왔을 끼다. 니형이 중학을 척 나오고 면서기가 떠억 돼 봐라. 남부러울꺼 하나 없다. 고생이사 되지만 뒷바라지 잘해야 된다.』
『형아 전에 언젠공 아부지한테 지게작대기로 발모가지 뿔라킬뿐 안했능기요? 공납금 가지고 친구들 빵 사주고 했다고요? 그런 형 마음 내가 잘 압니더. 뭐 사주면 안 놀리고 안 사주면 놀리고.』
눈에 들어오는 매운 연기보다도 아들의 그 말이 더 맵게 아버지의 마음을 싸 덮었다. 이놈이 이번에는 별탈 없이 왔능강? 밤낮없이 허부고 뜯고 손톱 닳아가며 해준 공납금 허탕에써지 않았능강? 놀림 안 받을라꼬. 에이고 지랄같은 팔자! 아침에 나올 때 아내가 꿈자리 시끄럽다고 하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니 형은 우리집에 희망 잉기라.』아버지는 커다란 소리로 말하면서 불안을 잊으려 했다.
길은 마을 앞으로 지나고 있었다. 저녁바람이 서늘하니 멍석 펴고 마당에 나와 앉은 사람도 없고 동네 위를 휘감는 모깃불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초가집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피어 희끗이 보였다.
『아부지요. 박꽃은 우째서 밤에만 피능기요?』
『몰라. 남 보이기 남사시럽은 일이 있능갑다.』
아들은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는 듯 더 묻지 않았다.
짚단 하나는 십분 가량 탔다. 아들은 짚단 머리를 쥔 손이 뜨거워질 때까지 들고 가다가 하나씩 갈아 붙였다, 십리를 채 못 왔는데 마지막 단이 다 탔다. 손이 뜨거워서 팽개치듯 짚단을 던지자 세상은 까맣게 변했다. 어둠에 익지 못한 눈에는 하늘에 총총한 별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을이 가까우면 짚단을 더 얻을낀데요.』
『곧 달이 뜰 끼다. 여기 앉아서 달 뜨도록 기다리자.』
아버지가 길바닥에 신을 벗어 깔고 앉았다. 아들도 아버지 곁에 붙어 앉았다. 뒷 산에서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무섭나?』
『무섭기는요. 걸음 배울라꼬 밤중에 혼자 얼매나 돌아 댕겼다고요.』
『허.』

<반딧불>하나가 까만 어둠 속을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허헛, 달이 박살나면 별이 되고 별 중에 허한 놈은 반딧불이 되어 떨어지고, 이치가 그렇지. 이눔아 꿇어앉는 버릇을 고쳐주어야지 밥통아. 허헛, 까치집이라? 굵은 침일랑 한정 없이 받고 있는 까치집이라, 우리집이라, 챙챙 감아 맨 발모가지에 오소리 가죽같이 침을 박구. 그래도 살아볼라고, 허헛…. 대나무밭 바람소리, 낮 부엉이 울음. 마구 뒤헝클리는 머릿속이 어지러운 채 아버지의 눈길은 반딧불만 따라갔다.
『아부지요. 그 할메 말입니더, 참 마음 좋지요?』
『그래 맞다. 그 콩죽 없었으면 길에서 쓰러질 뻔했다.』
『짚단 없었으면 이까지 우째 왔겠능기요?』
『그래 맞다. 저승 가면 남의 길 밝혀준 사람이 그중 최고로 간다 카더라.』
『그 할메 죽으면 선녀 대장 되겠네요.』
『그래 맞다. 그 할메 아까 하시던 말씀이 다 맞는 말씀이다.』
『맞슴니더.』
아들은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아들의 평화로운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의 눈에는 역력히 보였다. 발목을 동여매었던 허리띠를 갈라버렸을 때처럼, 잘 삭은 풋감처럼, 아들은 스스로 눈을 감고 모든 아픔을 몰아 내고 있었다. 아들의 머리는 가슴에서 점점 내려와 아버지의 무릎에까지 왔다. 허리를 펴고 흙바닥에 그냥 누운채 하늘을 향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달이 곧 뜰끼다. 별도 반딧불도 모두 모여서 달이 될 끼다. 늘 바람부는 가죽나무 낙락 끄트막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도 마른 풀잎을 물어 오고 제 깃털을 뽑아 둥우리를 틀어서 잘도 살더라.
무릎을 베고 누운 아들이 어느새 새룩새룩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이 들었다. 더 없이 고운 노래처럼 아버지는 아들의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마음을 채웠던 매운 보릿짚 연기는 단맛 나는 안개로 삭아가고 있었다. 모든 아픔도, 불안도. 니형은 우리 집의 희망잉기라.
두 팔을 뒤로 짚고 하늘을 쳐다보던 아버지의 머리는 점점 뒤로 기울어지고 마침내 짚었던 팔을 굽혀서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눈이 감기고 어느새 곤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달은 떴는데 부자는 일어나지를 않고, 흐릿한 달빛이 내려있는 수렛길 한복판 흙바닥에 둘은 엇갈려 누운채 곤하고 포근한 잠 속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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