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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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악수는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인사법중의 하나다. 장소와 때도 가리지 않는다.
오른손을 내밀어 서로 붙잡고 흔드는 것은 유래가 있다.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원시인들은 상대편에게 적의가 없다는 표시로 빈손을 내 보였다고 한다. 결국 그것이 친근감을 나타내는 인사법이 되었다.
사람을 사귀는 최초의 인사도 역시 악수로 시작된다. 1972년 초 봄 북경에서「닉슨」과 모택동이 만났을 때, 그들의 악수하는 두 손만 크게 부각시킨 사진이 있었다.『역사적인 악수』라는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 18년 전「제네바」에선『역사적인 악수기피』도 있었다. 주은내(당시 중공외상) 가「덜레스」미 국무장관에게 악수를 청했을 때「덜레스」쪽에서 고의로 외면했었다. 오늘의 감각으로는 우습기까지 하다. 그러나「덜레스」는 그 무렵 그것만이 최선의 외교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 있어선「덜레스」특유의 고집을 탓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역사적인 악수」는 요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다트」「이집트」대통령과「베긴」「이스라엘」수상의 악수. 한 때는 서울과 평양사이에도 악수를 나누었었다.
두 손을 맞잡고 흔드는 일은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을 두고「역사적」운운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인문세계의「드라머」다.
사각의「링」에서 생사를 결단할 듯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도「종」이 울리기 전에 악수를 나눈다. 승패가 결정 난 뒤에도 대개는 악수를 나눈다. 그것은 정의를 가진 인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방콕」의「아시안·게임」에서도 우리 선수와 중공선수가 허물없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서로 등을 두드리는 인간적인「제스처」도 있었다.
정치적인 이해를 넘어 그것을 결코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기이한 것은 북한선수들의 어색한「제스처」들이다. 그들은 운동경기까지도 판문점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다.
판문점만 해도 그렇다. 상대 쪽과 악수를 나누지 않는 회담은 이 지상에서 판문점이 유일무이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아시안·게임」의 남북축구결승에선 서로 악수도 나누고 등도 두들기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남북이 갈려 경기를 하는 것도 원통한데「아시아」의 눈길이 쏠린 가운데 악수까지 마다한 북한은 뒤늦게나마 무엇인가 느낀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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