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등의 언어 현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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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가 공개한 4가지 어문관계 개 정 시안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우리 말과 글을 현실 언어 생활에 맞게 수정·보완하려는 것으로, 이를 데면 국어 영역에 있어서의 혁신적 현실화 정책의 구현이라 하겠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가 이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현재 쓰고 있는 표준말은 1936년 왜정 하에서 조선어학회가 사정, 공포한 것인데 8·15 광복, 6·25 사변 등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쓰는 언어의 양태는 무척 달라졌다. 그동안 죽은 말도 많고, 의미 내용이 전혀 달라진 말, 그리고 새로 생긴 말 등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어학회가 당시 사정한 표준말은 6천2백여 단어였으나, 이번 개 정 시안에는 1만6천5백여 낱말이 포함돼 있어 약 1만 단어가 증가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조선어학회의「표준말 모음」에는 심지어 변소를「뒷간」이라고 했던 것이다.
또 이번 표준말 시안에는 지금까지 규정하지 않았던 표준 발음을 정한 부분도 있다.
우리 말의 발음이 국어 사전마다 달랐고 국어 교육에서 발음 교육을 옳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표준말의 정의를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 에서 "서울 지역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바꾼 것은 시의에 맞는 결정이라고 하겠다.
8백만 서울 인구 중 순 서울말을 쓰는 사람은 30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력이 있는 말이면 지방 말이라도 표준말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언어는 일종의 약속이다. 많은 사람이 쉽게 표기하고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으면 된다. 그래서 통일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도 40여 년 동안 써 오면서 몇 차례 부분적인 개 정은 있었고 73년에 맞춤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가 학계에서 의견이 팽팽히 맞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완전 명사·성명·전문 용어 등은 붙여 적고 한자어 가운데 익은 소리로 나는 강능·태능 등은 익은 소리대로 표기토록 한 것도 그 사용 관습상 적절한 개 정이라고 본다.
자모의 이름 중「기역」을「기윽」으로,「디귿」을「디읃」,「시옷」을「시읏」으로 바꾼 것은 특기할 만한 일로 24개 자모의 이름이 비로소 일관성 있게 된 셈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문교부안과 국어국문학회 안·한글학회 안·신문편집인협회 안 등 이 난립,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신문의 외래어 표기가 달라 많은 불편을 겪어 왔으나 통일안이 마련돼 퍽 다행한 일이다.
이번 어문 관계 개 정 시안 중 다만 헌법을「헌뻡」이라고 발음한다거나「꼬두밥」(고두밥), 「쪽집개」(족집게)등 된소리(거센소리)를 표준발음으로 채택한 것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국가의 언문 시책이 국민의 정서를 순화하는 방향으로 다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언어의 경음화를 유도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도 편협 안을 많이 반영 장음표기를 없앤 것은 좋지만, 중국의 지명은 원지 음대로 표기하면서 일본어는 국제 음성기호와 대조하여 표기하도록 한다고 함으로써 소촌 과 대촌을 똑같이「오무라」로 한다는 것과「니이가따」에서 장음으로서의「이」자의 음가를 잃게 적어「니가타」가 된 것 등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어문 관계 사업개정 작업에 문교부 국어 심의 회 관계자는 물론이고 한글학회·국어 국문학회·한국 문학회·한글전용 국민 실천 회·한국국어 교육연구회·한국국어 교육학회 등 국어관계 전문단체들이 힘을 합해 심혈을 기울인 것을 높게 평가한다.
문교 당국은 내년 초 공청회를 열어 이 시안을 최종 확정해서 80년 도부터 시행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형식적인 공청회를 열지 말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두루 참여시켜 광범위하게 진정한 여론과 비판을 받아들여 보다 알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의 말과 글을 다듬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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