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간의 새 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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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란」사태와「쿠바」의 소련 핵 폭격기 관계로 미·소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카터」미국 대통령이「이란」의「팔레비」왕정지지를 표명하자「브레즈네프」는 즉『미국의 개입은 소련자체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러자「카터」대통령은 다시「멕시코」만에 미군병력을 집결시키고「쿠바」상공에 SR-71정찰기를 띄우겠다고 응수했다. 「쿠바」에는 핵 폭탄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소련의「미그」23기가 파견돼 있기 때문에 SR-71기 정찰기로 이를 포착,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련은「쿠바」에 대한 군사지원이 순수 방어목적에 국한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 일련의 사태발전은 62년의「쿠바」위기 때하고 여러모로 비슷한데가 많다.
그때도 소련은「쿠바」에·공격용「미사일」을 설치해놓고 미국이「터키」에 설치한「미사일」을 철수하면 소련도「쿠바」의「미사일」을 철거하겠다고 흥정하려 했었다.
그러나 소련의 이 핵 공갈은 당시「케네디」의 강력한 대응으로 좌절되었고, 미·소 관계는 급속히 긴장 강화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후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은 이른바「데탕트」라는 이름의 미·소「협력」종친에 커다란 비중을 부여해왔다.
그러나 이 협력「무드」는 73년을 고비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 「카터」시대에 들어와선 냉전도 협력도 아닌 그 중간형태의 전략이 대두하게 되었다.「카터」행정부의 이런 대소전략은 지난날의 짧은「데탕트」기간을 통해 이득을 본 것은 오직 소련뿐이었다는 반생에 기초한 것이었다.
65년부터 73년까지 소련은 총 1백80억「달러」상당의 기계와 실비를 서방측으로부터 수입해갔다. 이 액수는 상질「달러」로 환산해 전보다 약5배나 늘어난 숫자라 한다.
그런데도 소련은 그에 상응한「데탕트」보다는 오히려 막대한 군비증강과「아프리카」진출에만 골몰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이에「카터」대통령은 대소전략에 있어『무조건 양립할 수 있다고 과장만 하지 말고 대립점이 있으면 공공연히 그것을 표명한다』는 강경정책을 채택했다.
이 원칙에 따라「카터」대통령은『대통령지시18호』란 문서를 발표해 앞으로의 대소전략을 조정하게끔 한바있다.
이 전략은 한마디로 미국은 그 압도적인 경제력과 기술을 이용해 소련의 영향력 확대기도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미국의 일련의 대소상담취소와 일·중공 중친 정책, 그리고 세계도처에서의 대소 강경 자세였다.
이제 미·소 관계는 당분간 70년대 초와 같은 감상적「데탕트」로 복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50년대식 냉전이나「전쟁 일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의 이중적 상태에서 유동할 것 같은 조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쿠바」사태는「카터」식 대소전략의 핵용성이 검증될 중대한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브레즈네프」가 만약 이번의 미국의 조치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면 시대는 다시 62년 직후처럼「데탕트」를 운위하게 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사태는 보다 복잡하게 악화돼 미·소 관계는 한층 더 차가와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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