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신협」|조미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당시 「극협」은 서울에서 공연했던 작품을 가지고 매번 지방공연을 가졌었다. 그것은 단원들의 배당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아무리 성공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서울공연 하나만 가지고는 배당금이 넉넉지 못했다.
제작비를 빼고 나면 고작 교통비 정도뿐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배당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방공연을 갖게 되는데 지방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고스란히 모두 단원들 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연극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했던 극단은 오직 「극협」뿐이었는데 이것은 배당제도에다 지방공연을 열심히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연극의 지방공연이라면 부산·대구·광주·대전 등이 고작인데, 당시는 이런 대도시는 물론 마산·진주·전주 등 중소도시까지 모두 돌아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지방공연이란 그렇게 달가운 나들이는 아니었다.
다른 극단들은 지방공연을 간다고 서울역에 모이고 보면 찰떡같이 굳게 약속을 했으면서도 으레 몇명씩은 빠지게 마련. 그래서 극단 단장은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지방공연 때마다 극단 단장의 머리를 썩이게 한 것이 바로 이 연기자들의 이탈이었다.
그러나「극협」만은 이런 폐단이 없었다. 그것은 수익금 배당제란 매력적이고 파격적인 제도 때문이었다.
따라서 「극협」만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꼬박꼬박 지방공연에 참여했었다.
한바퀴 지방공연을 돌고 나면 운임과 숙박비를 제하고도 단원들의 주머니는 제법 두둑했었다.
한번은 부산공연을 가게 됐다. 물론 모든 단원이 빠짐없이 참가했다. 그때 조미령이 우리 「극협」의 단원이었다.
17∼18세였든가, 꽃같이 어여쁜 시절이었다. 조미령의 본명은 조제순. 경남 마산태생이다. 「동양극장」출신으로 아역부터 연기를 해온 깜찍하고 총명한 여배우였다.
「극협」엔 창단 때부터 참여했지만 나이가 어리고 해서 핵심「멤버」로는 대우를 받질 못했다.
그리고 배역에 있어서도 항상 김선영의 그늘에 가려 큰 역을 맡질 못했다.
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예쁜 여배우라 극단의 모든 젊은이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녀의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 젊은이들의 연정에 더욱 불을 질렀다. 조미령을 짝사랑하는 젊은이들은 연기자뿐만 아니라 조명·효과 등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들끼리 서로 경계하고 누가 승리자가 되느냐하면서 신경들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지방엘 갈때마다 극단의 어른들은 조미령을 보호하기에 특히 신경을 썼다.
부산공연은 광복동에 있는 부산극장에서였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지방엘 가면 지방마다 열렬한 연극애호가들이 있어 공연이 끝나면 연기자들을 곧잘 초대해 주연을 베풀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정겨운 인정의 교류였다.
첫날 공연이 끝난 그 날도 어떤 연극애호가가 우리들을 초대했다.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상례였다.
여름이었는데다 중노동에 가까운 연기를 하고 나면 한잔 술이 피곤을 푸는데는 좋은 약이 됐다.
그 사람의 뜻에 따라 김동원·이화삼·박상익·김선영·조미령, 그리고 나 등 7명은 그가 인도하는 술집으로 갔다. 여느 때는 극장에서 가까운 곳이 보통이었는데 그 날은 초량까지 가게됐다. 극장에서 꽤 떨어진 거리였다.
WMF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졌다. 그 당시 통금은 매우 엄격했다.
『아차』하고 단원들이 서둘러 길을 나섰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통금시간에 걸리고 말았다. 「사이렌」이 불기가 무섭게 경관들이 길을 가로막고 행인들을 붙들기 시작했는데 우리 일행도 미처 여관을 찾기도 전에 한 사복경관의 제지를 받았다.
그 순경은 밤샘근무를 위해서인지 약간 술이 취한 채 권총을 뽑아들고 행인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속절없이 우리도 일군의 통금위반자 속에 섞여들어 권총 든 순경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통금위반자라 해서 지금처럼 즉심에 넘긴다든가 하는 제도도 없었다. 다만 길 한 모퉁이에 모아놓고 새벽 통금해제시간까지 붙들어 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권총 든 순경은 통금위반자들을 모두 땅에 주저앉게 하곤 깍지낀 손을 머리 뒤로 올리게 했다. 그러고는 『탕탕!』공포를 쏘기도 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