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가 사는법] 결혼 10년차 김학래 임미숙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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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년차 부부 김학래&임미숙. 한창 개그맨으로 명성을 날릴 때 결혼을 하여 잉꼬 부부로 소문났었는데 어느 순간 개그맨으로서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불화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과연 그들의 10년 결혼을 어떠했을까? 오랜 결혼생활만큼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그들.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딱 열살 차이 나는 김학래와 임미숙


김학래는 올해로 쉰이고 임미숙은 마흔이다. 14년 전 어느 날, 서른여섯 노총각과 스물여섯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한동안 김학래는 부러움 섞인 ‘도둑놈’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10년 넘게 살아보니 부부 사이에 나이 차이는 헤아려도 부질없는,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먼저와 나중의 순서에 불과했다. 10년 어린 아내에게 걸핏하면 야단맞는다고 빙그레 웃음을 짓는 김학래. 마음으로는 아내와 동갑이다. “남자가 50이 되면 철이 든다,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내가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니었거든요. 사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을 몰랐어요. 마주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찜질방 가서 나란히 뜨뜻한 데 누워 있고,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돌 때의 포근함을 알고 나니까 그동안 아내가 많이 외로웠겠구나, 진심으로 이해가 가더군요. 결혼 10주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바뀌더니 지금은 라이프 사이클이 가족 중심으로 완전히 안착됐어요.”

부부가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것도 오랜만이다. 개그맨 본업에서 멀어진 지난 몇 년 사이, 매스컴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졌다. 워낙에 잉꼬 부부로 소문난 사람들이지만 활동이 뜸해지자 듣기 민망한 소문들이 나돌기도 했다. 누구는 헤어졌다고 하고 누구는 별거한다고 하고….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 아니면 그만이지 나서서 해명할 가치도 없는 소문이었으니까. 세상 어느 부부도 1년 365일 햇살이 반짝반짝 비치는 봄날만 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들에게도 분명 삐걱거리는 시간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위한 조율의 과정이었다.

10년동안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신혼 초부터였다. 여느 여자들처럼 꿈같은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녀는 집밖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남편에게 조금씩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개그맨으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즈음이었으므로 아이디어 회의에 녹화에 각종 행사 스케줄까지 처리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골프 모임, 친구들과의 술자리 등등을 모두 가정보다 우선 순위에 두다 보니 갓 결혼한 새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질밖에. 문제는 그런 날들이 그 후로도 1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난, 열심히 일해서 돈만 많이 벌어다주면 남편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을 뿐더러 굳이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죠. 집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내 마음을 똑바로 전하지 못했어요, 10년 동안.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핀트가 맞질 않았던 것 같아요.”

독신으로 지낸 시간이 길었던 데다가 중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한 탓에 더불어 사는 삶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김학래. 누군가에게 간섭을 받는 것도, 반대로 간섭을 하는 것도 싫었다. 딴에는 아내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관대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를 100% 믿었기 때문에 행동에 어떤 제약도 두지 않았다고. 친구들끼리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해도 무조건 OK. 아내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결혼 후의 몇 년이 나한테는 가장 바쁜 시간이었어요.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까지가 피크였죠. 일, 술, 친구, 골프…. 아이디어 회의하다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카드놀이도 하게 되잖아요. 지방에 공연 가서 일 끝내고 여럿이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우연히 합석한 여자들과 더러 어울리게도 되고. 나중에 돈을 잃거나 유쾌하지 못한 만남의 흔적들이 아내에게 발각되면 사건이 되는 거죠. 물론 집사람 외의 다른 여자를 좋아해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집사람한테 못할 짓 많이 했어요.”

임미숙, 우울증에 걸리다

그가 밖에서 화려한 한때를 보내는 동안 임미숙은 속으로만 아픔을 삭였다. 바가지를 실컷 긁어대기라도 했다면 상처가 그렇게까지 깊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겠지 눈물로 기도하던 그녀는 결국엔 의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울증의 일종인 공황장애가 그녀의 병명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극도에 달해 당장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는 증세를 보였다. 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덩달아 힘을 잃어가게 마련. 매사에 무기력해지면서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가 24시간 따라다녀 맥을 못 추게 만들더란다. 지난 10년은 그녀에게 블랙홀이었다.

“대화가 되질 않았어요. 무슨 말을 하다 보면 항상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죠. 왜 우리는 대화가 안 될까, 그게 제일 답답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인내뿐이더군요. 침대 맡에 앉아서 하루 종일 울며 기도하던 날도 있어요. 동영이가 엄마 왜 우냐고 물어보면, 어린 아들한테 미안해서 그냥 너무 행복해서 우는 거라고 둘러대고. 정말 힘들 때에는 갈라설까, 수도 없이 갈등을 했었어요. 그때는 우리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죠.”

치료법은 단 하나, 남편

아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김학래는 알지 못했다. 그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결혼 7~8년 즈음. 그제서야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서서히 몰려왔다. 가족에게 빵을 주지 않고 부스러기만 떨궈준 꼴이었다. 아내를 안방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장롱쯤으로 여기는 보통의 대한민국 남자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화를 해보기로 작정했다.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얻은 병이니 치료법은 하나, 그가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알면 걱정할까봐 일부러 감추고 있었던 거예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요. 신앙에 의지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혼자 아득바득 살려고 발버둥쳤나봐요. 그렇게 참지 말고 따질 일이 있으면 따지고 소리도 지르라고 했어요. 싸울 건 싸워야지 참는다고 능사가 아니잖아요. 둘이 같이 의사 선생님한테 상담도 받고 교회에도 착실히 나갔죠. 그러는 사이에 차츰 좋아지더니 완전히 건강해지기까지 2~3년이 걸리더라구요. 나도 제자리 찾는 데 그만한 시간이 소요됐구요.”

다시 새로운 인생의 첫장을 열다

“남편으로 인해 괴로웠던 10년이 결국은 나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어요. 원인이 남편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나의 잘못이 뭔지 파악하게 되더군요. 남편의 권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내 책임도 컸어요. 우울증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데, 절대 별난 병이 아니에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신체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에서 탈이 나잖아요. 우울증도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오는 거고, 감기처럼 한번 호되게 앓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오히려 약간의 우울은 자신의 내면을 깊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걸요. 우울증 앓고 계신 분들 너무 움츠러들지 마시고,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분들 참고 기다리세요. 꼭 돌아오니까요. 행복과 불행은 자기 선택에 달렸더라구요.”

낙산으로 떠났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계기로 터닝포인트한 두 사람은 이른 새벽 일출을 보면서 새로운 인생의 첫 장을 열었다. 길고 어둑어둑한 터널을 빠져 나온 순간의 환희를 무엇에 빗댈까. 죽음과 절망의 공포가 가시고 오래도록 꺼내어 쓰지 못했던 기쁨과 열정의 감정들이 되살아나자 조용히 숨통이 트였다. 남편을 향한 미움과 원망도 깨끗하게 불타버렸다. 10년 먼길을 돌고 돌아 그녀의 둥지로 날아든 남편이 고맙기까지 하다는 임미숙. 연애 시절에도 요즘같이 애틋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안한 가정과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는 일터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을 문득문득 발견한다.

기획 : 허윤미 기자(여성중앙) | patzzi 노영선
기사제공 : 팟찌닷컴 (http://www.patz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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