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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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여당이 소비자 보호법을 제정키로 한데 대해 우선 환영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이제까지 소외되었던 소비자 보호 문제가 정부·여당에 의해 새삼 인식되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통상적인 기준으론 법안 통과가 매우 어려운 현시점에 소비자 보호법이 제의됐다는데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소비자 보호 운동을 명분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개할 의향이 있다면 좀더 일찍 입법화를 서둘러야 했다. 때문에 정부·여당의 소비자 보호법 제정 움직임이 혹은 선거를 앞둔 선심 공세가 아니냐는 오해가 나올법하다.
소비자 보호 운동이 시급히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에선 기업의 논리에 비해 소비자의 논리가 너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가격에서부터 품질·정보·공정거래 면에서 미흡한 점이 너무 많다.
때문에 소비자 보호법엔 소비자의 기본 권익 보호에 주안을 두어 정부와 사업자의 책무와 소비자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소비자 보호는 당분간은 정부에서 얼마나 적극성을 띠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 기조에서 소비자 보호가 얼마나 우대 받을 것인지에 대해선 상당한 의문이 있다. 아직도 정책 기조가 기업 육성에 의해 「파이」를 키우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법안엔 소비자 보호 시책과 정부와 사업자의 역할 등에 대해 매우 막연한 규정들이 많은데 이를 시행령에서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이며, 또 운용 면에서 얼마큼 엄격히 강제할 것인가에 따라 소비자 보호의 강도가 가름될 것이다.
소비자 보호 운동을 담당할 민간 기구에 대한 정부 지원·소비자의 불만 처리·상품의 품질 보장과 정확한 정보의 전달 체제 등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무 규정을 두어야 소비자 보호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보호는 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 보호가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상응한 정책 비중을 두어야 한다.
현재도 법이 없어 보호 운동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 거래 및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만으로도 소비자 보호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동법에 규정된 가격 표시·최고 가격·공정 거래 등이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물건을 정가대로 못 사는 실정에서 다른 무슨 소비자 보호를 바라겠는가.
소비자 보호는 물건값에 「프리미엄」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정부가 소비자 보호 운동을 물가 정책의 일환으로 파악, 그만한 정책적 비중을 둘 때 비로소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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