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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아부, 그리고 S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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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 총국장

얼마 전 삼성그룹의 한 전직 고위임원이 들려준 이야기다. “삼성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개의 ‘부’가 뭔지 아세요. 하나는 공부. 또 하나는 아부. 한마디로 ‘공부와 아부로 승부!’”

 농 섞어 한 말이겠지만 함축된 의미는 깊다. 어디 삼성뿐이랴. 어느 조직에서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할 게다. 그러나 동급은 아니란다. “근데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역시 공부더군요. 공부를 해야 ‘제대로’ 아부도 할 줄 압디다.”

 도처에 깔린 아부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해당된단다. “두 개(공부·아부) 모두 시간 날 때마다 해야 한다”고 우기는 ‘소수파’도 있긴 하지만 역시 내공 없는 아부는 들을수록 심리적 만족도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거물로부터 ‘공부’에 관한 비화를 들었다,

 2년 전 이맘때쯤. 자민당 총재 선거에 3명의 유력 후보가 나섰다. 선거전 초반 판세는 1위 이시바 시게루(현 간사장), 2위 이시하라 노부테루(현 환경상), 그리고 아베 신조는 3위였다. 이 무렵 일 재계의 거물들이 움직였다. 16명의 재계 수장들이 2주일 사이 3명의 후보를 번갈아 ‘심층 면접’했다. 세 후보는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며 재계에 ‘아부’도 했다. 성적표는 바로 나왔다. 16명 중 12명이 아베의 손을 들었다. 승부를 가른 건 ‘공부’. 재계의 기준은 명료했다. “우익(성향)은 바로잡아주면 되지만 경제는 아무에게 맡길 수 없다.”

 이때부터 판세가 뒤집어졌다. 전국 곳곳의 사업장을 통한 고용창출, 후원금 지원 등을 통해 일 국회의원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재계가 아베 손을 들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현역 의원들 표가 아베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결과는 아베의 역전승. 정치의 세계 또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하나 공부란 게 단지 책 읽고 보고서를 열심히 읽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다양한 의견을 직접 듣고 체감소통을 하며 나라의 나아갈 길을 터득하는 게 바로 공부다. 공부하는 정치인에 국민은 감격하고 감동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낙선한 서울시장 후보를 향해 “(당선하려면) 뻥도 치고 했어야 한다”는 말을 중진의 훈수랍시고 의기양양 내놓는 정치인은 공부로 따지면 낙제점이다.

 어디 정치인만 탓하랴. 우리 사회에 만연된 SNS(여기서는 ‘서로 남 씹기’의 줄임말이다)는 위험수위를 넘어선 느낌이다. 건전한 비판은 사회의 거름이다. 하지만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남의 패배, 몰락을 얻어내기 위해 우리 모두 ‘일단 SNS!’로 내닫고 있는 건 아닌지 자성할 때다. 망신주기와 흠집내기에 익숙해지면 더 큰 망신과 흠집에 집착하는 법이다. 이런 나라에 발전은 없다. 국가,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이러다 SNS가 공부·아부 외에 또 하나의 ‘성공의 조건’으로 자리매김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