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내실의 유아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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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낮에 혼자 집을 보던 8순 할머니가 강도범에 살해된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가운데, 이번에는 또 대낮 「아파트」에서 역시 혼자 집을 지키던 여섯살난 유치원생 어린이가 강도에게 피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비단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근래 들어 저항능력이 거의 없는 노약자나 어린이가 자기집 안방에서 죽음을 당하는 비타적 범죄가 우리 주변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세태는 실로 충격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할머니나 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지대라 할 수 있는 가정마저가 폭력에 의해 침범되고 유인되는 비인간적인 상황의 조성을 뜻할 뿐만아니라, 최근의 범죄양상이 특별한 원한이나, 꼭 그래야만할 별다른 이유없이도 단지 몇푼의 돈을 뺏기 위해 노인이든 어린이든 닥치는대로 살해할만큼 잔인·흉폭해졌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확실히 최근 경향각지에서 빈발하고 있는 갖가지 강력범죄는 하나같이 인륜사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패륜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물질만능적 풍조가 팽배한 세태라고는 하지만, 돈2만원을 훔치려고 철부지 유치원생을 살해하는 잔학행위를 어찌 정상적인 인간사회에서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놀라게했던 김대두사건이나 이종대사건등은 비록 그 피해 규모가 다르기는 하나, 실은 모두 이번 사건과 같은 유형의 흉악범죄다.
이러한 병적 현상은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국민이 살고있는 시대적·사회적 상황과 결고 무관한 것일 수가 없다.
범죄란 본래 한 특정 범죄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저변에는 이그러진 사회병리가 투영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병리의 근원이 도의심의 타락과 인간에 의한 인간소외의 일반화 때문에 비롯된 것임도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고, 심지어 이웃에 사는 동포의 죽음앞에서도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머리 숙일술 조차 모르는 풍조가 결국 이처럼 무서운 사회상을 빚고 만 것이다. 이것이 우리사회 깊숙이 도사려 있는 범죄의 정신력학이다.
때문에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그 집합체로서의 사회가 건전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도덕률에 바탕을 둔 인간정신을 고취하게끔 유도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고귀하다는 생명외경의 사상과 세상에는 돈따위로는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엄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회기풍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함께 오늘같은 도덕적 부모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현재와 같이 급격히 바뀌어가고 있는 주거환경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며, 비참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에 따른 새로운 자위적 생활양식을 체득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모든 범죄에 있어 부주의든 과실이든, 피해자의 「피해도발」 책임도 도외시할 수 없다는 형사학의 교훈을 우리는 특히 강조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어린이나 연로자 혼자만이 집을 지키는 환경은 떠돌이 불량배와 같은 잠재적 범죄 예비군으로 하여금 범행을 촉발시키는 자극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날로 증가하고 있는 핵가족화의 추세에 비추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연약한 어린이나 노인 혼자에게 집을 맡기게 함으로써 범죄자를 불러 들이게 하는 취약성은 어느 방법으로든 배제돼야 한다.
특히 「아파트」와 같이 단절된 집단주거에서는 이웃끼리의 유대를 좀더 긴밀히 함으로써 「고독자의 집단」과 같은 근린관계를 하루 빨리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로 이웃집에서 빚어진 강도살인사건 조차 모르고 지내는 삭막한 인간관계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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