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의 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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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말과 글이 쉽고 고와야 하는 것은 그것과 일반 국민과의 밀접한 관계로 미루어 볼 때 더욱 절실하다.
이번에 법무부가 판결문이나 공소장·수사기록 등의 어려운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 한다는 보도는 이런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무릇 법이란 일반 국민과 거리가 먼 것 같으면서도 잠시도 우리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것은 법률이 단순히 법조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법은 대체로 일본의 것을 그대로 번역해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영자 용어가 많고 권위주의적인 문구가 수없이 많다.
잠시 법전을 들춰보아도 『공중의 음용에 공하는 정수』 (일반이 마시는 맑은 물, 즉 수도물) 『폭행을 도취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므로』 (때린 후 뺏지 않았으므로) 『허무인명의』(거짓 이름) 『자기의 물건을 취거하여』 (물건을 갖고가) -등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어려운 법조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조서, 공소장 또는 법원 판결문 자체에도 어려움은 이에 못지 않다.
여러 장에 달하는 공소장·판결문이 대체로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맺는지 알 수 없는 긴 문장으로 된데다 그나마, 용어가 어려우니 형사사건 또는 소송의 당사자들마저 자신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졌으며, 자기에게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해 어리둥절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법조계의 용어에 일본의 잔재가 아직도 깊이 남아 있다는 것은 법조계 자체만의 의견이 아니었기에 법무부가 부분적으로나마 용어 순화운동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국민이 알지 못하면 그 법은 있으나마나, 아무런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국민학교만 나와 한글밖에 모르는 국민도 법을 읽고 이해해야 법질서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당국이 법률 문화를 아무리 주창해도 진정한 의미의 법률문화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같은 법조 용어의 어려움에도 한 원인이 있다.
사법부가 판결문을 한글로 쓰기 시작한 것도 10여년이 지났고, 한글 타자기로 수사기록 및 공소장을 만들게 된지도 벌써 수년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법원 및 검찰기록이 어려운 것은 그 내용을 한글로 풀어쓰지 않고 소리만 따서 한글로 옮겨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법조용어의 진정한 한글화가 얼마나 어렵고 법조계 자체의 반발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도 한자 세대가 법조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법운용 습관을 쉽게 버릴 수는 없지만 언제인가는 고쳐야 할 것들이기에 이번 법무부의 첫걸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발전이나 문화 상달이 모든 국민의 참여없이 이뤄질 수는 없다.
한글이 우리 고유의 글이고 이를 대부분의 국민이 이해하기 바란다면 어려운 법조용어는 하루 발리 우리말로 가다듬어져야 한다.
법무부측의 이같은 요청을 받은 문교부로서는 국어학자를 비롯한 국내의 각계 전문가들을 이번 작업에 참여시켜 보다 쉽고 다듬어진 우리 법률용어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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