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전히 좁은 시상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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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량 있는 신인을 기대하는 것은 어느 시대·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술계는 신인발굴을 공모전에만 의존한다. 화랑이나 전문지의 활동이 미미하기 때문에 일정한 공개적 작품모집으로 자유 경쟁시켜서 뽑는 수밖에 없다.
이런 공개 경쟁 제에는 상금과 운영비 등 막대한 비용이 든다. 국전의 경우 77년도 예산은 상금2천만 원에 운영비1천5백만 원. 물론 전시장 대여료는 이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에 비해 관람료 수입(77년)은 8백50만원정도.
그래서 대형의 미술공모전은 과거 국고에 의한 관전이 통례였다. 일제하의 선전과 해방후의 국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근년에는 동인회에 의한 소규모 공모전이 속출했고 특히 언론기관이 주최하는 공로전은 관전과 대등한 수준으로 확대돼 가고있다.
그럼에도 신인의 등용문은 아직도 비좁다고 아우성이다. 좀 더 문을 활짝 열어 보다 많은 재능을 다각도로 발굴할 수 없느냐는 요청이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결코 좁은 문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수반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얼굴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사고방식대로 국전에만 매달리다보니 더욱 비좁아 보일 따름이다.
정부가 국전의 권위만을 내세우던 사고방식은 이미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현대사회는 세분화되고 그래서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듯이 미술 활동도 매우 폭넓게 다기 다양하다. 만약 관전으로 획일화·단일화한다면 한국 미술의 자율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점 일본에선 1930년대에 벌써 관전을 사단법인체의 운영체제로 바꿨으며 다른 민전과 대등한 입장에서 각기 개성적인 발전을 꾀하도록 조처했다. 또 「프랑스」의 명성 높던 관전은 도리어 민전의 성장에 따라 구시대의 유물로 남아있는 형편이다.
바꿔 말하면 여러 경향의 작품활동이 각기 개성적인 관문을 자유로 선택하게 한다면 국전의 부작용이 자연 해소됨은 물론 오늘의 한국미술도 폭넓게 비약할 소지를 갖게된다.
그런데 국전에서 상을 받거나 추천 초대작가가 되어야 교직을 확보하게되고 그게 곧 생활보장이 되니까 온갖 수단으로 그걸 쟁취하려 한다. 작품수준은 차치해 두고 쉽게 출세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풍조에 젖어있다. 그리고 일단 어떤 「레테르」를 쟁취한 뒤엔 평생을 보장하는 훈장처럼 자위해버림으로써 조로 현상에 빠져 자멸하는 예가 허다하다. 그것은 국가가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당초의 의도와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공모작품을 보면 대체로 그렇게 저질일 수가 없다. 기성의 어느 아류에 편승하거나 추상 개념도 모르고 물감 칠한 예가 허다하다.
그렇게 처세에 신경 쓰고 이해 타산적이어서는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없다.』-이것은 심사에 참여한 한 평론가의 비판이다.
이런 현상은 공모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갖가지 상제도가 다분히 공로상의 성격을 띠어 왔으며 현재의 작품 내용이 문제시되지 않았다. 상이란 본시 구하는 자세에 주는 것인데 흔히 표출된 부분만 보고 주며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선입관을 앞세운다. 그래서 주어야할 사람보다는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곤 한다.
그러나 상 가운데 최고의 상은 「국민이 주는 상」이다. 가령 이중섭 박수근 같은 작가는 생전에 상을 받은바 없으나 모든 미술애호가들 스스로 우러나 아끼고 감동한다. 동전이니 상이니 하는 예술외적 요소는 상행위에 오용되기 안성마춤일 뿐 작가의 창작활동을 평생 보장하는 것이 돼서는 안되겠다. 【이종석 기자】

<나의 제언 시상은 논공행상 아닌 창작 상이라야>
미술계의 시상제도는 기성미술가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공로상과 등용에 주어지는 신인발굴 상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국가·문학단체·시 예술원에서 주어진 상의 성격이 공로에 치우쳐 있었으며 그래서 돌아가며 받는 상쯤으로 인정되었다.
신인에게 주어지는 상은 국전을 중심으로 한 등용의 수상제도가 가장 두드러졌고 최근에 와선 여러 신문사가 주최하는 전시에 많은 신인상들이 주어지고 있다.
대체로 다른 분야에 비하면 미술쪽 수상의 상금이 많은 것이 두드러지고 있다. 상금을 다투어 올림으로써 권위화 하려는 인상도 보인다.
상은 역시 창작에 대한 보장이요, 고무이다. 때문에 그것의 명분도 뚜렷해야 하고 객관성이 있어야한다. 상금이 곧·보상이나 명분에 대치되어질 수는 없다. 상금을 노리는 요행심리나 투기성이 어떤 형태로나 유포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좋은 수상풍토를 마련키 위해서는 성격 있는 창작 상이 많아져야 하겠고 제도의 엄격성으로 해서 권위가 상승되어야한다. <오광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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