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프리미엄」|임헌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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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교직에 있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은 그 가정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특수한 예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학생은 그 성격이 여유 있고 활달하며, 성적도 좋고 얼굴까지 예쁘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 가난한 집안의 학생은 성격과 성적과 용모에서 그 반대현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가난한집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재능과 인물이 없으며, 성격이 비뚤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평등하게 귀엽고 깨끗한 몸으로 태어났으나 첫 울음을 터뜨리면서부터의 영양섭취와 성장환경이 어린아이들을 달리 만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가정환경에 따른 청소년의 능력 차이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도 재능이 있기에 장학생이 되곤 하는 미담이 입시계절을 흐뭇하게 했다. 교과서도 변변히 사지 못하는 학생이 우등을 하곤 하던 이야기가 우리 세대에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릴때부터 「재능」은 부모의 「재능」과 비례해서 개천에서 용이 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제 아무리 용으로 태어나도 하늘이 아닌 개천에 있으면 미꾸라지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 요즘 세대의 교육적 「멘델」의 법칙인 것 같다.
즉 태어난 그대로 성장하던 시대가 아닌, 소위 근대화 이후의 경제적 영향으로 인간의 능력까지 돈으로 육성·환산하도록 변한 것이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한 소녀가 공원으로 10여 년간 「피아노」를 만드는 동안 전연 음악적 소질이 없는 학생이 「피아노」 개인교수를 받는다면 후자가 보다 훌륭한 재능을 나타낼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세상의 변화에 따라 언어도 퇴색하는데 형설지공이란 말도 무의미해져 가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엔 돈 없이 어렵게 공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 간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마치 재능 있는 경마용 말을 어릴 때부터 짐수레나 끄는 말로 기르는 안타까움이 우리 주위엔 없는지 염려된다.
따라서 짐수레나 끌 말들이 경마용 말로 길러져서 자기들이 잘난 듯이 경마장을 달리는 희화적인 장면이 연출될 날이 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흔히들 요즘 온갖 「프리미엄」의 해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인생의 「프리미엄」은 말하지 않는다. 사람다운 삶은 이런 인생의 「프리미엄」이 없이 교육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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