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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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가위-
결실의 계절·거둠의 계절·감사와 기쁨의 계절이다.
봄철의 파종과 한여름의 땀방울들은 황금빛 오곡으로 영글고 있다. 산에는 주렁주렁 과실이 무르익고, 지붕의 고추도 빨갛게 불타고 있다. 지난 반년이 그토록 힘겹던 「일」의 계절이었다면 이젠 그 힘든 「일」을 보장받는 축복의 계절인 것이다. 그래서 추석은 「일구는 자」의 명절이요, 일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은총이다.
이 축복과 은총은 자연의 시혜일수도 있으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조상들의 은덕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래서 추석은 간절한 추모와 경조의 명절이다.
열심히 땀흘려 일해서 그 대가로 풍성한 수확을 얻고, 그 기쁜 마음을 들어 자연과 조상을 기리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자연 속의 삵을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추석은 모든 이에게 「뿌리」에의 회귀를 일깨우는 상기의 명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었나. 우리 조상들은 이날이 오면 으레 연중 최고의 잔치와 놀이를 즐겼다. 집집마다 술을 빚고 떡을 해 조상에 다례하고 이웃과 동락했다.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일 쉬어보세/신도주 올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금년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적인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귀향과 다례와 성묘에 부산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마다 값진 수확과 핏줄의 따스함과 일체감의 기쁨을 자축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한 이 흥겨운 열락과 일체감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있을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양로원의 할아버지·할머니들, 고아원의 어린 소년·소녀들, 부녀 보호소의 버림받은 여성들, 공장 기숙사의 귀향 못한 근로자들, 그리고 정착촌의 나병환자들-.
이런 그늘진 구석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추석세기는 마냥 흥청거릴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요란한 흥청거림이나 허례나 선물공세가 한가위의 『이웃집 나눠먹세』와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 보다는 조촐한 아침상이나마 귀향 못한 이웃을 초대하거나, 가까운 실향민의 우울함을 위로해주는 편이 더 훈훈한 일일 것이다. 아픔을 나누어 갖고 인정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 바로 한가위 명절의 공동체 정신일 터이니 말이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 역시 분수에 넘치는 선물일랑 아예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시골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딸이 한번 돌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기쁨을 누리시는 것이다. 작은 것이면 어떻고 싼 것이면 어떻다는 것인가.
조촐하고 분수에 맞는 식탁, 경건하고 질서 있는 성묘 길, 고통 속의 이웃과 함께 하는 정겨운 추석. 금년에는 진정 눈살 찌푸려지는 과잉소비와 탈선이 없는 가운데 한가위 명절의 경건한 아침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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