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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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명선거-. 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강조되면서도 으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게 바로 이 공명선거란 과제였다.
30년이란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우리는 너무나 여러번 공명선거의 소망이 배신되고만 경험을 지니고 있다. 3·15 부정선거 같은 이름난 부정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도 많은 선거가 숱한 부정과 타락으로 얼룩져 왔다.
선거란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는 민주정치에 있어 정당성의 기초다. 이 기회를 통해 국민들은 쌓였던 불만을 해소하게 되고 정치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확인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당치 못하면 정당성은 확인될 수 없다. 선거에 있어 부정과 타락은 그 선거를 통해 확인하려는 정당성을 훼손하는 도전행위다.
공명선거야말로 그 선거를 통해 확인하려는 바를 확인하도록 보장하는 기본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선거사가 이러한 공명선거란 기준에 미흡했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큰 불행이었다.
공명선거란 여타후보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있으나 역시 기본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관권의 선거개입이다.
그동안 문제된 선거의 타락·부정도 대개는 관권개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공명선거」라 하면 관권이 엄정 중립을 지키는 선거라 할 수 있다. 관이 엄정 중립만 지키면 여·야 후보자들에 의한 부분적인 타락이나 과열도 똑같은 기준에서 억제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정도로 악화되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집권당이 국회에서 안정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 때문에 관권의 엄정 중립이 흔들릴 소지가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현행 유신헌법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안정세력 확보에 대한 집권당의 우려를 제도적으로 불식해 버렸다.
국회의원 총수의 3분의1은 이미 확보되어 있으며 선거구당 2명씩 뽑는 선거제도를 통해 여당이 지역구출신 의원의 반 정도를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게 되어있다.
설혹 지역구의원의 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해도 안정세력 확보에는 전혀 지장이 없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느 때 보다도 공명선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공명선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명선거란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는지 모른다.
그런 뜻에서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불법행위는 여야를 막론하고 용납 않겠다』고 한 박대통령의 『절대공명선거』 발언에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의 공명선거 촉구처럼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호한 결의를 읽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중앙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역구별로 지방행정기관과 여당후보의 인간관계로 인해 관의 중립이 재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정부가 엄정 중립을 다짐해도 이러한 사례가 조금이라도 남는 한 공명선거가 이뤄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모범적인 공명선거가 이뤄지도록 정부·여당을 비롯해 여타 입후보자와 관계자들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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