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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죄스러운 마음 이제야" … 현충일에 추모비 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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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31년 만에 당시 순직한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6일 열렸다. 추모비는 테러가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의 북문 입구 경비동 부지(258㎡)에 가로 9m, 높이 1.5m, 두께 1m 크기로 건립됐다. 제막식에 참석한 순직 외교사절·수행원의 유족들이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잔해가 앙상한 아웅산 묘소(사진 위)와 중상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는 이기백 합창의장(사진 아래)의 당시 모습. [AP=뉴시스, 중앙포토]

아웅산에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지 30년 하고도 8개월 만이다. 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비가 내리는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 세워진 9m 길이의 추도비 앞에 이기백(당시 합참의장) 전 국방부 장관과 테러로 순국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자리를 같이해 당시를 회상했다.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28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2분 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그 자리에서 17명이 숨졌다. 대통령의 동남아 5개국 순방에 수행했던 인사들이다. 북한의 테러 도발로 당시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재익 경제수석,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자부 장관과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 장관도 당시 폭탄 파편이 온 몸에 박히고 다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전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테러였지만 전 대통령은 자동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다.

 추모비는 사건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아웅산 묘역 북문 인근에 세워졌다. 이범석 전 장관의 부인 이정숙 여사, 함병춘 전 실장의 장남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등 유족 23명이 자리했다. 대학생이었던 함 원장은 쉰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됐다. 김재익 전 경제수석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는 “20년 전 아들과 함께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만 했다”며 “(현장에) 가까운 곳에 추모비를 세워줘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추모비에 새겨진 남편, 아버지, 사위의 이름 앞에 유족들은 목이 메었다. 김용한 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장남인 김태균씨는 “미얀마 현장에 온 것은 처음”이라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그는 “올까 말까 만감이 교차했지만 결국 왔다”며 “시대가 가고 개인적인 아픔과 국가적 아픔도 이렇게 하나의 획을 긋고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도 “30년이 흐르는 동안 순국하신 영령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며 “오늘이나마 제막식이 이뤄졌으니 고귀한 희생이 후세들의 교육장이 돼서 이 역사적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추모비 건립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2년 미얀마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모비 건립을 제안했지만 미얀마의 성지인 아웅산묘역 앞에 한국인 추도비를 세우는 데 대해 일부 미얀마 정치권의 반대에 부닥쳤다. 하지만 추모비 건립위원회의 노력으로 지난해 말 미얀마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하며 추모비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당초 30주기인 지난해 10월 제막을 목표로 했지만 연기되었고, 국내에서 추모비를 제작해 현지로 보내는 방식을 통해 2년 만에 추모비를 세울 수 있었다. 희생자 1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긴 추모비는 사이의 틈을 통해 테러 발생 현장이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때 아웅산 추모비를 참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곤(미얀마)=공동취재단,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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