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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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상반기중 공식통계로는 도매물가가 7·3%, 소비자물가가 10·3%밖에 안 오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가계에서 느끼는 물가는 이와 엄청난 거리가 있다.
집값·전세값등의 폭등까지 감안한 가계비부담증가는 결코 10%선이 아닐 것이다.
하반기엔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여 연말까지 14%의 상승선에서 억제할 것이라고 했으니 이에 큰 기대를 거는 바이다.
그러나 공식 물가통계와 가계비부담증가 사이에 너무 차이가 나고 또 물가상승요인이 아직도 많다는 점에서 14%의 물가안정 장담을 가계비부담의 안정으로 선뜻 받아들이기는 주저된다.
사실 공식통계상으론 어떻게 나타났든 작년·금년의 물가상승은 상당히 심각하며 그 후유증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이런「인플레」기엔 부와 소득이전이 두드러지게 진행된다.
실물자산의 가치증식이 가속되는 대신 근로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채무자가 예금자보다 덕을 보게된다.
전반적으로 가계로부터 기업으로 소득이 이전되며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의 격차가 심화된다.
정액 근로소득자는 물가상승에 따른 가계비부담의 가중뿐 아니라 축적된 금융자산등의 실질가치 저하를 당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요즘과 같이 집값이 폭등하는 여건에선 더욱 두드 러진다.
쉽게 말해 월급만으로 사는 사람은 하루아침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가 졸지에 가난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되고, 특히 집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은 그동안 애써 모은 것들이 일시에 무너져 버린다는 결과를 낳는다.「인플레」가 사회에 소망스럽지 않는, 소득과 부의 격차심화를 빚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인플레」로 인한 부와 소득의 역재분배에 대해선 세제등의 조처를 통해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
역재분배의 주름이 클수록 시정조처도 획기적이어야 한다. 기존질서 안에서 세법 몇 조항을 적당히 손질하는 것만으로써 사태를 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일·쇼크」후에도 물가 폭등속의 서민생활보호를 위해「1·14조처」라는 비상수단을 동원한바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을「오일·쇼크」때와 꼭 같이 볼 수는 없겠지만, 통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서민가계의 보호를 위해서나 점점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 세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단순히 근로소득세 부담을 조금 내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세제전반에 손을 대어 계속 증대되는 재정수요를 세금 부담면에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재산소득과 근로소득, 고소득과 저소득, 가계와 기업간의 세금부담의 형평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하는 것이다.
세금전반에 대한 인식전환과 결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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