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부 김영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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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커서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니까 내 어렸을 때의 꿈 같은 것을 그들에게 자꾸 베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서울 살림에선 너무 어렵군요.』
넓은 마당, 한쪽엔 하얀 빨래가 가득 널려있고 바로 그 옆 채마밭에서 상치와 고추를 따다가 마루에 밥상을 차리고 …『귀가 멍멍할 정도로 조용한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냉수에 밥을 말아 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던 여름-.
그 여름의 꿈을 이제 열살. 여섯 살의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다시 피워보고 싶다는 주부 김영애씨(서울 용산구 이촌동 민영「아파트」H동).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이나 남편까지도 그런 맛을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해요.』
온통 인공조미료와 군것질에 맛들여졌기 때문에 무엇이든 집에서 만든 것.「엄마의 정성」으로 정결하게 만든 음식을『바깥에서 사먹는 것보다 맛없다』고 오히려 불평할 때가 많다. 더욱이 그「그리운 시절」의 식탁도 이제는 마음놓고 꾸며낼 수가 없다.
『밥상 차리기가 무서워요. 호박잎을 쌈 싸 먹으려해도 여기에 얼마나 농약이 묻었을까 생각하면 만들 수가 없고 오이냉국도 새파란 껍질 그대로는 먹을 수 없어 껍질을 벗겨내고 채 썰려니 힘만 몇 배로 더 들뿐 제 맛을 잃지요.』
여름이면 어린이처럼 부풀던 그의 옛 시절 입맛은「중금속 오염」「농약중독」「부패식품」등 무서운 주변 때문에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워낙 사는 일이 복잡하니까 어떤 때는 무관심하게 아이들을 위험한 곳에 내보내기도 해요.』며칠 전 김여사는 6살 꼬마에게 10원을 줬는데 이것으로 튀김과자를 사다먹은 두 자녀가 밤새도록 토해내 한밤중에 파출소에까지 달려간 일이 있었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들이 모두「설마」하는데서 큰일이 나는 것 같아요.』그리고 결국 이것은「나와는 관계없다」는 무책임한 태도에서 커진다고 그는 이유를 붙인다.
불량식품 같은 것도 내가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풀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만 엄청난 위험을 던져준다고, 그는『언제부터 이렇게 이웃을 잊고 살게됐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남을 적처럼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하니 너무 각박하군요. 그래서 요즘 점점 여름이 더 더워지는 것 같아요. 』 <끝>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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