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한 경제동향 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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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그 질적인 다양화과정이 심화된 경제에서도 경제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 때문에 경기 변동에 대해서 정책이 대응한다고 하는 것이 거꾸로 경기국면을 악화시키는 일이 많아 이른바「거번먼트·사이클」이 발생하게 된다는 의견이 경제학계에서는 널리 인정되고 있다.
이를 상식적으로 풀이해서 말한다면 경기가 내용적으로는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는 때에 겨우 경기과열대책을 집행하게 되어 경기침체국면을 가속시키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경기동향이 이미 회복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늦게 불황대책을 집행함으로써 경기과열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선진경제에서도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차질에 따른「사이클」이 발생하는 이유는 경제동향을 파악하는데 시간적인 「레그」(지체)가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을 발견하고 정책을 입안하는데도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며 입안된 정책이 집행되어 효과를 파생시키는데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거번먼트·사이클」을 최대한 축소시키는 노력이야말로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하면 할수록 절실히 요청되는 사항이다.
근자 우리경제도 양과 질 양면에서 다같이 정책집행의 시간적인 차질에 따른 경기국면의 악화현장이 파생될 만큼 커지고 복잡해진 것도 사실인 것이며, 때문에 종전보다 훨씬 기민하고 능동적인 경제동향파악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경제를 제대로 정책이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이점을 강조하고『관계부처는 경제와 물가 문제를 다룸에 있어 근년 수요가 예상보다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맞는 생산계획을 세우고 공급 부족 분에 대해서는 미리 여유 있게 수입 비축하는 등 기민하고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통령의 기민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지적은 다름아니라「거번먼트·사이콜」이 개재될 소지를 배제하라는 뜻으로 풀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각부처가 경제동향파악에 게을렀음을 경고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지엽말절적인 기술이나 기교를 가지고 그때그때 사태를 얼버무려 수습하려는 행정관료들의 타성은 차제에 근본적으로 시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책은 보다 예측 적이고 보다 종합적이어야 하며 또 고차원적이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정책이 먼저 해명해야 할 과제는 경기국면이 어느 단계에 접어들고 있느냐 하는 사실파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부분적인 사건에 뒤따라가는 대증요법 만 가지고 사태를 수습할 수는 없다. 그 동안의「아파트」규제·증권규제·금융억제·가격통제 등 시책은 어떻게 보면 여론을 뒤따라가는『원님 지난 뒤 나팔 부는 격』의 정책이었지, 그것이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체계적인 정책이었다고는 하기 어렵지 않을까.
다음으로 오늘의 물가문제를 수습하는데 있어 근본적으로 정책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소비재부문과 기타부문의 불균형을 어떻게 시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투자는 엄청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이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닌 투자가 더 많기 때문에 자금공급과 소비재공급간에 근본적인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또 중간재공급능력과 투자수요·수출수요와 불균형을 확대하는 성질의 투자가 계속 됨으로써 각부문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물가를 계속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균형을 조정하는 큰 테두리의 정책골격이 먼저 확립되어야만 부문간의 모순을 전체적인 테두리에 맞추어 풀어 나갈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만 순리대로 문제가 풀려 나갈 것이다.
경제는 욕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며 냉혹한 경제의 논리를 충실히 활용하고서야 만 비로소 제대로 수습될 수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희소한 자원을 최선으로 활용하여 최대의 성과를 올린다는 경제원칙은 언제나 적용되는 기본원칙이므로 무제한의 자원을 전제로 하는 듯한 정책기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바탕이다. 이점 정책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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