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수해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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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제 서울에만 2백36㎜의 호우가 내렸다. 바로 며칠 전에는 영남 지방이 호우로 결딴이 났었다. 하늘이 돌아가며 혼을 내주는가보다.
기상학에선 하루에 80㎜만 넘으면 호우라 한다. 그 이하는 강우다. 따라서 1백㎜가 넘는 다면 대단한 호우다.
그러나 강우량이 많다고 덮어놓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2백m의 비가 3일 사이에 내리면 크게 염려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1시간 사이에 1백㎜가 쏟아지면 난리가 난다.
물론 곳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다. 동경 같은 곳에서는 50㎜가 넘을 듯하면 대우주의보를 내린다. 침수의 위험이 있는 저지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경의 하수·배수 시설과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서울은 지난해의 예산이 1백50억원 뿐이었다. 동경은 68년에도 7백80억원이 넘었었다.
워낙 서울은 하수 시설이 엉망인 것이다. 지난해에 서울시가 밝힌 총 배수 계획 면적은 2만6천여km.
그중의 절반만이 배수 시설이 되어 있다. 그나마 그 중의 대부분이 강북이니까 강남 쪽은 엉망이랄 수밖에.
서울의 수해가 해마다 늘어만가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까. 상습 수해지가 몇군데씩이나 엄존 하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어제 호우에 목동, 신정동, 방학동, 망원동 등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민가 6백21동이 침수되었다. 거의 모두가 지난 몇해 동안 계속 수해를 겪어온 곳들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사람 살 곳이 못되지 않는냐는 의문도 나온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막을 수 없는 수해는 절대 아니다.
지난해에 엄청난 참사를 빚어낸 안양천의 수해 원인도 배수 시설의 미비 탓이었다.
미처 몰랐다면 또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안양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안양천은 72년에도 수해를 겪었다. 그때부터 「수해 위험 지구」로 점 찍혀 왔었다.
개봉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영등포의 저지대를 위한 배수 「펌프」들이 일제 때부터 써오던 노후 품들이라는 것도 해마다 얘기돼 오던 터다.
그뿐 아니라 서울의 지선 하수도들은 대개가 직경이 45㎝ 밖에 안 된다.
그것으론 집중 호우를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손을 안 쓰고 있다가 번번이 당하는 수해라면 조금도 하늘을 탓할 일은 못된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올해에는 얼마나 끔찍한 호우를 맞게될지 지레 걱정이다.
한강의 수량을 감시하는 최신 「컴퓨터」는 있다지만 무서운 건 외수가 아니라 이젠 내수다.
서울만이 위험한 것도 아니다. 전국이 상습 수해 위험 지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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