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안문 사태 뒤 터진 민주화 요구에 ‘당근’으로 대처

중앙선데이

입력 2014.06.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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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10면

1989년 4월 사망한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추모집회를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6월 4일 일요일 새벽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계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당국이 언급한 사망자만 319명이다. 당시 외신들은 수천 명이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현대 중국의 민주주의와 능력주의’ 국제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판펑(樊鵬)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위원, 이희옥 성균중국 연구소장, 대니얼 벨 칭화대 교수, 장융러(章永樂) 베이징대 교수(왼쪽부터). 최정동 기자
6·4 천안문 사태 발발 25주년이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은 탱크를 앞세워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당국이 인정한 희생자 숫자만 319명이다. 이후 ‘민주’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중국은 정치개혁 대신 능력이나 실적, 즉 메리트(merit)에 따라 정치적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인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30일 성균중국연구소(소장 이희옥)는 ‘현대 중국의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른바 ‘중국 특색의 민주’에 대한 현황과 한계가 다양하게 제시됐다.

천안문 사태 25주년, 중국은 어떻게 변했나

메리토크라시는 중국 정치를 읽는 키워드다. 『중국의 신유학』을 저술한 대니얼 벨(철학) 칭화대 교수의 화두이기도 하다. 벨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1인 1표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능력 있는 지도자의 통치는 좋다 ▶중국의 일당정치는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메리토크라시는 우수하다 ▶중국 정치는 진보할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벨 교수는 메리토크라시의 원류를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공자(孔子)의 덕치(德治)에서 찾았다. 천안문 사태로 정통성 위기에 빠진 중국은 1990년대부터 메리토크라시를 강화했다. 훈련과 시험을 통해 관료의 자질을 높였다.

학술회의에선 메리토크라시의 방법론도 논의됐다. 벨 교수는 “지능은 2류지만 성격은 1류”라고 자부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뛰어난 참모진을 다룰 수 있었던 대통령의 사회성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최선의 정책을 채택하는 토대가 됐다고 소개했다. 벨 교수는 좋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격으로 지적능력·사회성·윤리성을 제시했다. 영혼 없는 관료를 배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동료·상사·부하가 6대2대2의 비율로 이뤄진 평가시스템을 제시했다.

메리토크라시는 포퓰리즘을 배척한다. 『민주는 좋은 것』이란 글로 유명한 위커핑(兪可平) 중국 중앙편역국 부국장(차관급)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반대론자다. 그는 올 초 발표한 ‘민주 혹은 포퓰리즘(民粹)’이란 논문에서 “민의를 전달할 수 있는 합법적 시스템을 만들어 민의 정치가 포퓰리즘이나 폭민정치(길거리 정치)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리토크라시는 결국 인치(人治)다. 유능한 정치지도자의 통치를 뜻하는 현인정치(賢人政治)이기 때문이다.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 장융러(章永樂) 베이징대 교수(법학원)는 민치(民治·by the people)와 민향(民享·for the people) 사이의 긴장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민향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 선거를 민주의 핵심 특징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지난 10년간 하급 정부에서 경쟁 선거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정치 실험을 진행했지만 ‘확대 불가’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쟁적 간부 선발은 ▶당의 지도력이 약화되고 ▶비용이 과다하며 ▶능력 없는 인물의 선출을 막을 수 없고 ▶파벌이 생겨나는 등 많은 단점을 초래했다. 대신 정치지도자들의 대민 접촉을 늘리는 ‘군중노선’과 정부 평가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채택했다.

중국의 메리토크라시는 강력한 국가 자율성을 통해 보완을 이뤘다. 장융러 교수가 제시하는 중국의 국가 자율성은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강력한 조직력이다. 8500만 중국 공산당원은 국내 엘리트를 총망라한다. 이들이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으로 단일대오를 이뤄 나라를 이끈다. 둘째, 막대한 국유경제다.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의 경영 수익을 취한다. 이는 납세자와 국채 구매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서구 선진국이나 제3세계 민주국가와 달리 중국의 국가 자율성을 강화시켰다. 셋째, 당정 불가분 원칙이다. 당이 모든 관료를 관리하는 당관간부(黨管干部) 원칙은 인재 선발과 양성, 경쟁을 일원화시켜 메리토크라시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천안문 사태 이후 25년 동안 중국이 겪은 정치 경험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의 굴기(崛起)가 경제만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동안 선진국은 탈공업화로 인해 과세 대상이 줄면서 만성적인 세수 부족을 겪고 있다. 1인 1표제에서 부자 증세와 복지 감소는 불가능하다. 과도한 국가 채무는 국가 자율성을 발목 잡고, 재공업화 전망도 어둡다. 아랍의 봄, 색깔 혁명으로 대표되는 제3세계 민주화 국가들은 경쟁 선거를 도입했다. 민주화 열기는 선동과 분열로 이어졌다. 정치참여는 있지만 정치통합은 어렵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좋은 본보기다. 중국은 정치통합을 유지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멈추면 정통성 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정통성의 적자(赤字)다. 진일보한 정치개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메리토크라시의 목표는 최선(至善·Best)의 정치다. 이와 달리 삼권분립과 경쟁 선거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비교적 나은 차선(較善·Better)의 정치를 목표로 삼는다. 메리토크라시가 이상론이라면 민주주의는 현실론이라는 의미다. 중국사를 전공한 요코야마 히로아키(橫山宏章) 기타큐슈시립대 교수(사회시스템연구센터장)의 주장이다. 요코야마 교수는 『중국의 정치위기와 전통적 지배』라는 저서에서 중국의 메리토크라시를 ‘현인지배의 선정주의(善政主義)’로 정의한 뒤 다음과 같이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즉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어떤 훌륭한 현군(賢君)이 지배하는 권력도 부패한다. 서구 사회는 정치는 부패한다고 전제했다. 가능한 한 부패를 줄일 수 있는 제도를 찾았다.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이다. 국민의 민의에서 지배의 정통성을 찾았다. 1인 1표제 선거로는 반드시 좋은 지도자가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나 심지어 어리석은 사람이 선출돼도 존중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정치도 최대한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었다. 비교적 나은 정치를 확보하기 위한 현실론이다.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이 펼친 ‘아두론(阿斗論)’이 대표적이다. 쑨원은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 강연회에서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등장하는 촉한(蜀漢)의 2대 황제 아두를 예로 들면서 당시 중국 인구 4억 명을 무능한 권력자 아두에 비유했다. 아두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고 모든 권력을 유능한 제갈량(諸葛亮)에게 위탁했다. 권력과 능력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쑨원은 주장했다. 시대에 맞는 제갈량에게 메리토크라시를 구현해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 공산당은 이처럼 정치가 부패하는 것은 권력을 장악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한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패 타락하지 않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기 위한 각종 장치를 모색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펼치는 반부패 운동 역시 메리토크라시를 위한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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