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영남·로펌 출신 독점 민심에 무심한 靑 민정라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명 전원 판검사 경력. 그중 4명은 서울대 법대에 영남(3명은 TK) 출신. 학맥이나 지연이 매우 동질적인 집단이다. 4명은 판검사 퇴임 후 고액의 보수를 준다는 대형 로펌에서 일했고, 한 명은 전 골프장 대주주의 사위다. 청와대 민정라인 비서관급 이상의 면면이다.

경력이나 능력으로는 빠질 게 없는 이들이 지금 인책론에 시달리고 있다.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물러나면서다. 물론 야당에선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을 1차 문책 대상으로 꼽는다. 하지만 김 실장의 지휘하에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 실무를 담당하는 민정라인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민이 의문을 던진다. 왜 안대희 전 후보자가 5개월간 변호사 수임료로 16억원을 벌어들인 사실을 거르지 못했느냐고. 법조계에선 ‘거르지 못했다’기보다 ‘별 문제 안 된다’고 넘겼을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여기엔 동질적 인적 구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게다가 로펌 근무 경험에 비춰 억대 수임료를 ‘정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한 비서관은 야당에서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라는 공격을 받을 정도니 금전감각이 서민과 같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게 겹쳐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정서를 감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심에 공감하고 이를 지도자의 결정에 반영해야 할 민정라인이 법조인 논리에 함몰된 ‘법정(法政)라인’으로 변질됐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다.

2006년 민정수석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은 “국민 정서에 맞는 인사 검증 기준을 적용하려면 내부에서 실질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양한 인사들이 민정라인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과거엔 민정라인 비서관급에 사회단체, 언론사, 정부부처 출신이 고루 배치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2003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낸 같은 당의 박범계 의원도 그와 비슷한 진단을 내놓는다. “민정라인은 공직자 비리를 탐문하고 인사 검증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심 동향도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 곳이다. 지휘부 전원이 법조인 출신이라면 다양한 민심 체크가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민정라인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정라인은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과의 접촉도 가능한 한 피하고 있다. 청와대 내 다른 수석실과도 장벽이 높다. 민정라인에 몇 차례 업무 협조를 요청했다 거절당한 청와대 1급 간부는 익명을 전제로 “같은 청와대 소속에도 그렇게 배타적인데 다른 이들에겐 어떻겠나. 다양한 평판을 들을 생각도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2월엔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물어봤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하기도 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한 불법 정보조회의 배후로 안전행정부 김모 국장을 잘못 지목해 의혹을 키웠지만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았다.

내부논리가 외부와 차단된 채 돌고 돌아 자가 증폭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엔 인물에 대한 세평을 듣기 위해서라도 언론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려 했다. 검증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주관을 배제하려면 다양한 이들에게 세평을 듣는 게 중요하다. 조직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면 정보가 단절돼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민정라인은 민정수석(차관급)을 정점으로 민정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무비서관·민원비서관(각각 1급) 등으로 구성된다. 인사 검증은 공직기강비서관 담당이다. 그 밑엔 검찰·국세청·경찰·국정원 등에서 파견된 15명이 근무한다. 이들이 공직 후보자의 재산 형성과 탈세·병역 등 기초적인 스크린 작업에 이어 도덕성 검증과 평판 조회를 책임진다.

민정라인은 공직 기강 단속과 함께 국가 권력기관인 검찰·국세청·경찰 등도 관리한다. 대통령에게 제기되는 각종 민원도 챙긴다. 그 같은 광범위한 역할 때문에 과거의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의 민심 창구’로 불렸다. 민심과 여론 동향을 적기에 포착해 국정에 반영해야 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젠 성난 민심 앞에 서 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