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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알바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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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남민우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위원장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들 중에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이 있었다. 세월호에서 2박3일에 11만7000원의 임금을 받고 식당 배식 등을 하던 청년 아르바이트생들이다. 이들 ‘알바생’은 회사에서 교부한 근로계약서는 물론 보험조차 없었다 하며, 선박 근로자로서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희생됐다. 이 꽃다운 청년들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인정해 주지 않은 사각지대의 투명인간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 전 청년위원회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했더니 최저임금 미준수, 임금 체불, 폭력 행위 등 부당고용을 당한 사례가 10명 중 9명꼴로 나타났다. 또한 10명 중 8명은 근로계약서조차 없이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노동법에서는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고, 시간당 521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알바 청년들이 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 컵을 깨뜨리자 사장이 머리를 때렸다든가, 퇴근길에 문자로 일방적 해고를 통보받는 등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엄연히 불법인 사례들도 너무 많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부당 처우를 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항의하거나, 노동관서에 권리구제를 신청한 청년들보다는 그냥 참거나 일을 차라리 그만두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한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무관심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약자로 전락했다. 청년 문제가 열악한 취업 현실과 아르바이트뿐이겠는가? 고부가가치 창조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웹툰·웹소설 등 디지털 창작 분야에서도 청년 창작자들은 상상 이상의 고충을 겪고 있었다. 이름과 실력을 쌓아 연재를 따내도 표준계약서 없이 부당한 계약에 발이 묶이기 일쑤다. 창작자가 배제된 채 유통사·판매사들이 2차, 3차로 유통을 하는가 하면, 사회 전반의 저작권 의식이 희박해 소중한 창작물들이 10원에 불법 유통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젊은 창작자들은 합숙을 하며 밤낮으로 만화를 그려도 월수입 50만원이 채 안 되는 현실에 일본 망가(만화)산업의 하청업체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 교수는 지난 30년간 사회가 시장 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 사회(Market Society)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효율성에 근거한 시장 지상주의가 확대되면서 시장의 가치가 사회적 규범(norms)까지 바꾼다고 관찰한 것이다.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켜나가야 할 사회적 규범까지 변질되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부패와 불평등을 불러일으킨다고 일갈한다.

 그러면 청년들을 둘러싼 우리의 사회적 규범은 정당한가? 청년세대를 사회 도처의 약자로 남겨두고 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닌가. 기성세대가 쌓아온 고도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구조적인 그림자가 가장 먼저 청년세대에 드리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청년들은 스스로를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스펙 쌓기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여유가 없고, 연애를 일종의 사치로 여기는 풍토 위에서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도서관·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살아간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청년들이 무대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약자로서 피해를 당연한 듯 감내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 청년세대는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라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 기성세대를 부양할 세대다. 충분히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일자리의 양과 질 등 사회적 자원 배분에 있어서 젊은 세대에 대한 정당한 배려와 정당한 사회적 규범이 필요하다. 그간 청년들의 권리에 대해 도와주거나 지켜주는 활동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성세대가 앞장선다면 청년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는 노력이 뒤따를 것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청년들의 명복을 빈다.

남민우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위원장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