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은 장차 어찌될까?|이덕오(경북 안동 길산 국민교 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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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우선 나면서부터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귀찮은 식구가 또 하나 불어났다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허영에 들뜬 도시의 어머니들에 의해 어린이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사랑의 젖을 먹지 못하고 「플라스틱」병에 든 짐승의 젖으로 길러지고 있으며, 「콘크리트」벽 속에 갇혀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유해식품을 먹고 「텔레비전」으로 인생을 배우기 시작한다.
먹고 입고 말하고 노는 것 모두가 천박한 물질문명과 그 문명에 정신이 팔린 부모들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으며,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벌써 아이들은 너무나 그 심신이 병들어 있다.
형식적 훈련과 점수 따기 공부를 위한 경쟁으로 타락한 학교교육은 아이들의 품성을 한층 더 비뚤어지게 만든다. 수·우·미·양·가-다섯 단계의 학력과 인간의 상대적 평가 방법은 지금까지 단계마다 일정한 수효를 확보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남이 못하는 것이 제가 잘 하는 것이다.
「수」 가 되기 위해서는 「수」가 되었던 사람을 하나 끌어내려야만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서로 도와 함께 참을 알고자 하는 인간스런 마음이 여기서는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이런 제도 속에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어린이들은 서로 사람을 미워하는 삶을 배우며 자라났던 것이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점수를 몇 점 얻었나 하는 데만 정신이 갔지, 그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에서 아이들이 진정 무엇을 배우고 그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걱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세상은 돈과 권세가 제일이고, 출세를 하려면 우선 일류학교를 나와야 하고, 일류에 들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위에 올라서는 꾀와 뱃심과 우월감부터 길러야 되니 부모들은 아이들을 들볶아 과외공부를 시키고, 혹은 돈을 써서 학급의 회장 자리라도 앉히고 싶어한다.
오늘날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교문을 나서면서 왜 그처럼 괴상한 몸짓을 해 보이는가. 국민학교(더러는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유년기에서부터 아동기와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들어서기까지, 인생을 가장 충만하게 살았어야할 그 오랜 성장기간을 그들은 너무나 불행하게 지내온 것이다. 천부의 재질도 성격도 소망도 무시당한 채 다만 어른들의 힘과 권위로 획일성을 강요당했고 무의미한 경쟁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모조리 빼앗겼던 것이다.
묶어 놓았던 가축도 풀어 놓이자마자 미친 듯 뛰어다닌다. 십 몇 년을 묶여 살아온 생명들이 이제 풀려나 날뛰는 모습이라고 보지 않고 어떻게 이 현상을 설명하겠는가. 만일 이밖에 또 다른 견해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태도이겠는데 이것은 인간 자체를 믿지 못하고 우리민족을 열등시하는 심히 그릇된 태도라 할 것이다.
가정에서 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학교에서 비뚤어지게 길러진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구원해 줄 수 있는 자리는 문학이다. 아동문학이야말로 버림받은 어린이를 안아주고 비뚤어진 그들에게 참된 동심을 깨우쳐 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 어린이들은 끝내 구제 받지 못하고, 아동문학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시험점수에 정신이 팔린 부모들은 문학작품을 읽히려 하지 않고, 혹은 돈이 없어 책을 사주지 못한다. 출판업자들은 만화잡지가 아니면, 날치기로 번역한 외국의 작품들만을 겉모양만 호화스런 책으로 꾸며 팔고 있다. 어른들이 읽는 문학잡지는 월간이고 계간이고 여럿 되지만 아이들이 읽을 문학잡지는 단 한가지도 책방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렇게 버림받을 수 없다. 왜정 때도 어린이 문학잡지가 있었던 것이다.
대체 이 땅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찌하려는 것인가. 여기에다 문학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아동문학을 천시하여 동화와 어린이를 위한 시를 쓰기를 꺼리고, 심지어 아동문학작가들 자신이 아동문학과 아동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한심한 세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
입으로만 어린이요. 어린이 헌장이요, 어린이날이요, 어린이 해요 하는 것 다들 무슨 소용인가. 어린이를 박대하는 사회는 꽉 막힌 사회다. 유행가와 욕설과 유해식품으로 자라나는 아이들, 불필요한 지식을 외며 창조성이란 전혀 없는 기계가 되어 가는 아이들, 점수 따기 경쟁으로 인간성을 잃어 가는 아이들, 우리민족의 정서를 심어주는 동화 한편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살벌한 놀이나 즐기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장차 어찌될까?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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